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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 대선 결선서 승리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 |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후보가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정권의 방향타가 4년 만에 좌에서 우로 급격히 꺾였다.
범죄 척결과 불법 이민 단속, 군의 역할 확대를 전면에 내세운 그의 승리는 최근 중남미 전반에서 확산되는 우파 집권 흐름과 맞물려 지역 정치 지형의 변화를 예고한다.
14일(현지시간)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 카스트 당선인은 58%대 득표율로 공산당의 지지를 받은 히아네트 하라 후보를 큰 표 차로 제쳤다. 개표가 확정되자 그는 “칠레에는 질서가 필요하다”며 치안 회복과 국가 운영의 우선순위 재정립을 강조했다. 하라 후보는 즉각 패배를 인정했고,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역시 당선인에게 축하와 협력 의사를 전했다.
카스트는 세 번째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쥔 베테랑 정치인이다. 하원 4선 경력과 함께 강한 메시지의 캠페인으로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유세 과정에서 그는 불법 체류자 추방을 공언하며 “떠나야 할 때가 오기 전에 떠나라”는 경고성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조직범죄 대응을 위해 군의 권한을 확대하고, 필요하다면 비상사태 선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엘살바도르식 대형 교도소 건설과 갱단 대거 수감 정책 도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제 정책에서도 급격한 방향 전환이 예고된다. 카스트 당선인은 공공예산 감축,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노동시장 유연화, 국영기업 민영화 등 ‘시장경제 회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만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이 아닌 만큼, 온건 우파와의 협상 없이는 주요 입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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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를 다시 위대하게' 모자 쓴 카스트 지지자 |
이번 결과는 보리치 정부에 대한 피로감과 치안 악화에 대한 불안이 결집된 결과로 해석된다. 수도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강력범죄가 늘고 성장 둔화가 겹치면서 ‘정권 교체’ 요구가 분출했다는 것이다.
다비드 알트만 칠레 가톨릭대 교수는 “유권자들이 급진화했다기보다 좌파를 대체할 현실적 선택지로 카스트를 택한 것”이라며, 오랜 정치 경력에 대한 친숙함이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카스트의 집권은 국론 통합이라는 난제를 동반한다. 군사 독재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사회에서 ‘질서’를 앞세운 강경 노선은 좌파 시민사회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여소야대 구도 또한 ‘철권 통치’ 구상을 제약할 변수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번 승리는 중남미의 ‘블루 타이드’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등에서 보수 성향 정부가 잇따라 들어선 가운데, 칠레의 우향 전환은 지역 흐름에 힘을 싣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은 즉각 환영 메시지를 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축하 성명에서 공공 안전 강화와 불법 이민 종식, 양국 상업 관계의 재활성화를 공동 과제로 제시하며 협력 의지를 밝혔다. 인구 2천만 명의 칠레에서 카스트 당선인은 내년 3월 11일 취임한다. 임기는 4년으로 연임은 불가하지만 중임은 가능하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