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09] 매니 미란다의 유산
  • 제이컵 애덤스 Jacob Adams is a journalism fellow at the Daily Signal and a former First Things junior fellow. 전문 기자

  • 미국은 11월 8일, 마누엘 “매니 미란다”가 향년 66세로 선종하면서 가장 빛나는 영혼 가운데 한 사람을 잃었다. 수십 년에 걸쳐 매니는 워싱턴 D.C.에서 정치·외교·가톨릭 신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온 인물이었다.

    도시 전반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그는, 예순을 넘긴 나이까지 참여하던 대학 토론회에서도, 또 미 의회 의사당의 회랑에서도 모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많은 위대한 미국인들처럼, 매니의 삶 역시 국경 밖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아바나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먼저 스페인으로 이주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1976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뉴욕의 명문 가톨릭 학교들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이후 조지타운 대학교의 에드먼드 A. 월시 외교학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학교 집행위원회의 학생 대표로 활약했고, ‘서컴내비게이터스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매니는 모교에 대한 깊고 지속적인 사랑을 지녔으며, 조지타운의 가톨릭적 정체성을 가장 열정적으로 수호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자, 수백 명의 조지타운 학생들에게 멘토가 되었다. 동문으로서 그는 필로데믹 소사이어티에 자주 참석했고, 필로노모시안 소사이어티의 부활에도 힘을 보태며 학교의 토론 전통에 적극 참여했다.

    조지타운 대학교가 교내에서 ‘GU Choice’라는 낙태 찬성 학생 단체를 공식 인정하고 재정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조지타운 이그나시오회의 법률 고문으로서 교회법적 절차를 통해 해당 단체에 대한 학교 지원을 중단시키려는 활동에 나섰다.

    교회 당국과의 수개월에 걸친 협의와 교황청에 대한 최종 항고 끝에, 대학은 결국 GU 초이스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매니의 옹호 활동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지타운은 여전히 병원 내에서 낙태를 허용하지 않으며, 등록금으로 낙태 로비 활동을 벌이는 단체들도 교내에 두지 않고 있다.

    수십 년 뒤, 매니는 학교 행정 당국이 외교학대학의 명칭을 예수회 설립자 에드먼드 A. 월시 신부 대신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이름으로 바꾸려 했을 때, 학교의 원래 명칭을 지켜내기 위한 주요 옹호자로 나섰다. 이 밖에도 매니가 익명으로 후원한 조지타운 내 자선 활동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필자 역시 그의 삶에 대한 사랑과,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능력에 매료되었다. 그의 가톨릭 신앙에 대한 헌신은 다른 종교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들었고, 그는 교파와 종교의 경계를 넘어 폭넓은 우정을 나눈 인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매니는 본질적으로 밝고 용기 있는 전사였으며, 모교나 국가의 사명이 배신당하거나 소홀히 다뤄진다고 느낄 때면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민간과 공공 부문을 아우르는 탄탄한 경력 속에 자연스럽게 결합시킬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헤이스팅스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뉴욕의 유력 로펌 윈스럽·스팀슨·퍼트넘 & 로버츠에서 근무했고, 이후 워싱턴의 법률 그룹 러신 & 베키에서 미국 러시아정교회의 법률 자문을 맡았다. 공공 부문에서는 상원 사법위원회 수석 고문과 당시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였던 빌 프리스트의 정책 자문관으로 일하는 등, 의회에서 주요 직책을 수행했다.

    의회를 떠난 뒤 매니는 ‘서드 브랜치 콘퍼런스’의 의장이 되어, 전통적 가톨릭 신앙을 지닌 새뮤얼 얼리토의 연방대법관 지명에 대한 지지를 조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얼리토가 인준되자 매니는 큰 기쁨을 느꼈다. 그는 2006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보수연합’으로부터 권위 있는 로널드 레이건 상을 수상했지만, 그의 진정한 보상은 2022년 얼리토 대법관이 헌법상 낙태 권리를 뒤집은 ‘돕스(Dobbs)’ 판결의 다수 의견을 집필했을 때 찾아왔다.

    매니는 외교 정책 분야에서도 중요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2007년과 2008년,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입법 국정 운영실’ 국장으로 봉직했다. 이 역할 속에서 그는 이라크 정부의 입법 역량을 강화하고, 이라크와 쿠르디스탄 변호사 단체 간의 조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그는 미국의 지원 아래 이라크의 법체계를 현대화하기 위해, 자국의 주요 법조 지도자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과 만나게 한 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동안 매니는 보수 진영의 핵심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그는 헤리티지 재단‘의 방문 법률 펠로우였고, 패밀리 리서치 카운슬의 정책 펠로우이자 수석 고문이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또한 그는 가톨릭 교육 기관에서의 신앙 충실성 보존이라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를 옹호하는 단체인 ‘뉴먼 추기경 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보수 운동은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영원한 진리와 미국적 전통을 위해 시대의 유행하는 여론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대체 불가능한 거인을 잃었다. 이제 그의 수많은 친구들과 제자들에게는, 이 위대한 유산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책임이 남겨져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2-16 07:35]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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