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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이 12월 17일 보도한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소식은, 북한 체제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일한 정치 의례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재확인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당과 국가, 인민의 최대의 추모의 날’이라는 수사는 엄숙하지만, 그 실질은 애도라기보다 권력 정당화의 연출에 가깝다.
이번 보도는 김정일 사망 14주기를 맞아 김정은이 0시에 맞춰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추모를 수행하는 주체, 즉 김정은 자신이다.
기사 전체는 김정일의 ‘성스러운 혁명생애’를 기리는 데서 출발하지만, 곧바로 그 유산을 “전면적 국가부흥의 장엄한 새 전기”로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의 사상과 영도를 찬양하는 구조로 전환된다.
이는 북한의 추모 담론이 갖는 고유한 역설을 드러낸다. 죽은 지도자를 기리는 행위가 현재의 지도자를 절대화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계보는 애도의 언어를 통해 다시 한 번 정치적으로 봉인된다. 추모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현재 권력의 유일성과 불가침성을 확인하는 의식이 된다.
보도에 등장하는 참가자 구성 또한 상징적이다. 당·정부·무력기관의 지도간부들과 군 지휘관들이 일제히 동원된 장면은, 이 행사가 자발적 추모가 아니라 체제 충성의 집단적 재확인임을 보여준다. ‘경건히 회억’, ‘열화같은 충성’, ‘굳은 맹세’와 같은 표현들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규범화된 언어이며, 이 언어에서 벗어날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영생홀”에서 김정일에게 ‘영생축원의 인사’를 드렸다는 대목은 북한 정치의 종교적 성격을 다시 드러낸다. 지도자는 사망 이후에도 ‘영생’의 대상으로 남으며, 현 지도자는 그 영생을 관리하고 중개하는 위치에 선다. 정치 권력이 종교적 상징을 흡수하고, 종교적 의례가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처럼 장엄한 수사와 의례의 반복은, 오히려 북한 체제가 직면한 현실적 위기를 가린다. 경제난, 식량 부족, 국제적 고립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번 보도 어디에도 없다.
‘강대하고 번영하는 강국’이라는 문구는 여전히 미래형 약속으로만 존재할 뿐, 현재 주민들의 삶과 연결되는 구체성은 결여돼 있다.
결국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보도는 추모의 뉴스라기보다 권력 유지의 매뉴얼에 가깝다. 애도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국가가 지시하는 의무가 되었고, 기억은 비판적 성찰이 아니라 충성의 언어로만 허용된다.
북한에서 ‘최대의 추모의 날’이 반복될수록, 그 추모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침묵시키기 위한 것인지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