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11] 절벽으로 치닫는 독일 주교회의
  •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공공정책센터 석좌연구위원, 석좌 교수

  • 1993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톨릭 도덕신학 개혁에 관한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는 오랫동안 자신들을 가톨릭 지성사의 최첨단에 서 있다고 여겨온 다수의 독일 신학자들의 자존심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실제로 이 회칙이 공포된 지 불과 1년 만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인간의 행복’과 ‘참행복’에 이르는 길에 관해 제시한 인간학적인 가톨릭 교리를 비판하는 글들만으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이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그 편집자는 독일이 교회의 신학적 영역을 “감시”할 특별한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독일 신학자들에게 이러한 감독 역할을 부여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독일 가톨릭 지성계의 저항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생각, 즉 “독일 신학자들은 폴란드인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는 발상 역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물론 교황 교도권에 대한 독일의 저항은 요한 바오로 2세 이전부터 존재했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출산 조절의 도덕적으로 정당한 수단에 관해 다룬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을 반포한 이후, 이를 옹호한 저명한 독일 신학자(혹은 주교)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도덕신학에서 진보적 가톨릭 수정주의의 중심은 피임 문제에서 동성애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제 ‘인간 생명’과 ‘진리의 광채’가 가르친 진리에 대한 독일의 저항은, 사실상 이 나라 대다수 주교들이 젠더 이데올로기와 이른바 “트랜스(trans)” 운동의 주장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단계까지 전이되었다.

    10월 30일, 독일 주교회의 사무국은 회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주교회의 학교·교육위원회가 작성한 「창조되고, 구속되며, 사랑받는 존재 : 학교에서의 성적 정체성, 다양성의 가시성과 인정」이라는 문서를 발표했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이 문서에서 말하는 “다양성”은 창세기 1장 27절(“하느님께서 사람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이 말하는 다양성이 아니었다. 이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무지개 이데올로기 옹호자들과 LGBTQ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확장해 온 “정체성” 목록이었다.

    쾰른에 기반을 둔 ‘domradio.de’의 보도에 따르면, 이 문서는 교사들에게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가시성을 증진하기 위해 그 다양성을 반영하는 언어를 사용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교사들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존중받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느낄 수 있는 교실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독일식 각성(woke) 급행열차’는 배교의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이 문서는 종교 교육 교사들에게 가톨릭 교회의 성윤리를 ‘차별화된 방식’으로 제시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숙고된 판단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교회와 신학 안의 논쟁적 쟁점들을 수업에서 다룰 것을 요청한다.”

    즉, 다음과 같은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성서적 인간학에 대한 명확한 확인. 2천 년 동안 인간의 번영과 성덕을 길러 온 성윤리를 교회가 권위 있게 가르친다는 선포. 회개의 요청.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덕적 식별. ‘전환’이나 ‘성전환 수술’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정신 건강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적 연구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성별 불쾌감이나 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젊은이들이, 가톨릭 교회가 도덕적 삶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참되다고 믿고 그 진리를 기쁘게 살아가는 종교 교사, 사제, 혹은 봉헌된 수도자에게 상담을 구해야 한다는 제안조차도 없다.

    이 문서가 따돌림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하는 점은 환영할 만하며, 잔혹한 소셜 미디어 ‘대화’와 부패한 인터넷 사이트들이 조성한 분위기 속에서 이는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또한 학교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위기가 “차별과 인격적 모욕”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을 존중으로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기본적 의무이며(인간적 품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알려져 온 진리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서 젠더 이데올로기나 무지개 활동가들, 트랜스 운동 옹호자들이 새로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신학적 이성과 사목적 책임의 포기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60주년과 시기를 같이한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당시 독일의 주교들과 신학자들(훗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되는 요제프 라칭거를 포함하여)은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들이 단지 ‘가톨릭 교회 주식회사(Catholic Church, Inc.)’의 지점장이 아니라, 각 지역 교회에서 참된 교사요 통치자이며 성화자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교회의 자기 이해를 올바르게 재조정했다. 그런데 주교회의의 한 위원회가 가톨릭 교리에 대해 “차별화된” 접근—곧 확립된 가톨릭 신앙의 진리들을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는 교육 방식을—요구하는 문서를 발표했다는 것은, 기이함을 넘어선 일이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배신이다. 그리고 이는 혼란에 빠진 영혼들이 언제나 제공되는 하느님의 은총과 참으로 자비로운 사목적 돌봄을 통해 치유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고통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처럼 참담한 독일의 상황은 교황청이 더 이상 무기한으로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2-18 07:52]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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