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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는 12월 18일자 보도를 통해 “지방들에서 자체의 경제발전공간을 확대해나간다”며 지방발전정책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보도는 ‘국가적인 지도와 방조’, ‘도·시·군의 자립성 강화’를 기본방식으로 내세우며, 각지에서 지방공업공장·보건시설·문화거점 건설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화려한 표현 뒤에는 북한식 ‘지방 자립’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와 근본적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선,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립성 강화’는 실질적인 재정 자율권이나 정책 결정권의 이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방이 스스로 예산을 편성하고 산업 구조를 선택하는 권한은 여전히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며, 도·시·군은 중앙에서 하달된 계획을 수행하는 집행 단위에 머물러 있다.
‘국가적인 지도, 방조’를 전제로 한 자립은, 말 그대로 지도와 통제 속의 제한적 자립일 뿐이다. 이는 시장 접근권, 외화 조달, 인력 이동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경제가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현실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보도는 20개 시·군의 지방공업공장, 보건시설, 문화봉사거점 건설을 성과로 제시하지만, 이들 시설이 어떤 재원으로 운영되고, 어떤 원자재와 에너지를 통해 유지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북한 지방공업의 고질적 문제는 ‘건설은 있으되 가동은 없는’ 현상이다. 전력 부족, 원부자재 단절, 기술 인력 부족으로 인해 많은 공장들이 준공식 이후 사실상 멈춰 서는 사례는 이미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이번에도 ‘시범단계의 성공적 진척’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 실제 생산성과 주민 소득 개선에 대한 구체적 수치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대규모 사업으로 강조된 신의주온실종합농장 역시 문제의 본질을 피해간다. 온실농장은 막대한 초기 투자와 안정적인 전력·연료 공급이 필수적인 시설이다. 그러나 제재와 에너지난이 상시화된 북한 현실에서 이러한 농장이 전국 지방경제의 자립 모델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
결국 이는 주민들의 일상적 식량 접근성을 개선하기보다는, 정권이 ‘보여주기식 성과’를 연출하기 위한 상징 사업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사 말미에 등장하는 “오늘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포부로 계속혁신, 계속전진해야 한다”는 표현은 북한 선전에서 익숙한 공식이다. 이는 성과 부진이나 실패의 책임을 정책 설계가 아닌 현장과 주민의 노력 부족으로 전가하는 언어다.
제도적 개혁 없이 노동 동원과 충성 경쟁만을 요구하는 방식은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기는커녕, 지역 간 격차와 주민 부담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방경제의 진정한 발전은 공장 건설 숫자나 준공식의 규모로 평가될 수 없다. 재정 자율성, 시장 접근, 이동의 자유, 정보의 개방이라는 기본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자체의 경제발전공간 확대’는 선전 구호에 그칠 뿐이다.
지방을 살린다고 하면서도 모든 결정권을 중앙이 움켜쥔 채 통제만 강화하는 현재의 방식은, 지방을 발전의 주체가 아닌 성과 연출의 무대로 전락시키고 있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지방의 중흥을 원한다면, 구호가 아니라 구조부터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