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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은 12월 22일, 북한에서 “국가적으로 진행되는 장애자 보호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장애자들이 “보통사람들과 꼭같은 사회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법률과 제도, 역사적 조치들을 나열하며 북한 체제가 장애인을 존중하고 보호해왔다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황한 수사는 오히려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 그 권리는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북한 당국은 공화국 창건 이후 장애자를 우대하기 위한 법률적·제도적 조치를 취해왔다고 말한다. 특히 1951년 전쟁 부상자를 위한 교정기구공장 설립 사례를 언급하며 체제의 ‘인도주의적 전통’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전쟁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력 손실을 보완하고, 체제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최소한의 생존 수단을 제공한 전시 동원 논리에 더 가깝다.
현대적 의미의 장애인 권리, 즉 이동권·교육권·노동권·정치적 참여권은 단순한 보호나 시혜로 충족되지 않는다. 선택의 자유, 정보 접근, 독립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서 이러한 조건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보도는 장애자들이 국가와 사회활동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말하는 사회정치적 권리란, 국가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의 동원과 참여를 의미할 뿐이다. 자유로운 결사, 비판적 발언, 정책 결정 과정에의 실질적 참여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주민이 통제와 감시의 대상인 사회에서, 장애자에게만 온전한 권리가 보장된다는 주장은 논리적 모순이다.
더욱이 탈북민 증언과 국제 인권보고서들은 북한 장애인들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으며, 평양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의료·재활·교육 접근성조차 극히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반복적으로 지적해 왔다.
이번 보도는 북한이 장애자 문제를 ‘국가적 성과’로 포장하려는 전형적인 선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진정한 보호는 선전 기사나 역사적 사례 나열로 증명되지 않는다. 투명한 통계 공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외부 감시와 협력의 수용이 뒤따르지 않는 한, 권리 보장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장애자를 존중한다는 말은 쉽다. 그러나 그 존중이 일상의 삶, 선택의 자유, 인간다운 존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반복되는 미사여구 속에서 오히려 분명해지는 것은 하나다. 북한의 장애자 보호 담론은 여전히 권리가 아닌 충성의 언어, 현실이 아닌 체제 선전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