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미사 경본은 ‘주님 성탄 대축일’을 위해 네 가지 서로 다른 미사 본문을 제시한다. 곧 ‘대축일 전야 미사’, ‘밤중 미사’, ‘동틀녘 미사’, 그리고 ‘낮 미사’이다. 이 성탄 미사들의 복음 독서는 2025년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들을 전해 준다.
‘대축일 전야 미사’의 복음(마태 1,1–25)은 복음사가가 전하는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포함하며, 요셉이 천사의 계시를 받고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계획에 굽혀, 임신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는 이야기로 끝맺는다.
이는 “이 아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에게 잉태되었기 때문”이며, 그 아이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분이기 때문이다. 복음사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명명하고, 예수를 유다 민족의 역사 안에 확고히 위치시킴으로써—“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열네 대,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열네 대,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열네 대”—나자렛 예수는 그분이 스스로 이해하셨고 최초의 제자들이 이해했던 바 그대로, 곧 구원사 초기 단계 전반에 걸쳐 유다 백성이 품어온 메시아적 희망의 성취로 이해되지 않는 한 결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반유대주의의 유독한 연기가 공적 삶을 오염시키고 있으며, 너무도 많은 젊은 가톨릭 신자들(특히 젊은 남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성탄 전야 미사의 복음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마르키온의 이단이 단죄된 지 1,881년 전부터 이해해 온 중대한 교훈을 가르친다.
곧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나셨으며, 그리스도교는 그 유다적 뿌리에서 분리될 수 없고, 그렇게 분리될 경우 신앙의 구조 자체가 치명적으로 훼손된다는 사실이다.
밤중 미사와 동틀녘 미사의 복음은 루카 복음의 유년기 이야기(루카 2,1–14; 2,15–20)에서 취해지는데, 이는 조지 프리드리히 헨델의 메시아의 영향 덕분에 성탄 이야기의 전형적인 서술로 자리 잡았다. 마태오의 족보가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 위치시킨다면, 밤중 미사의 루카 복음은 유다인의 메시아를 세계사의 광대한 흐름 속에 자리매김한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온 세상에 호적을 올리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 첫 번째 호적은 키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도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으므로, 갈릴래아 나자렛 고을에서 유다 지방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으로 올라가, 아내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올리러 갔다. 마리아는 이미 아이를 가진 몸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첫째, 구원사는 세계사 안에서 전개되며, 사실상 세계사에 참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무작위적이지 않으며, 역사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곧 창조주의 목적이 성취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역사의 끝에서 창조주는 태초부터 의도하셨던 것을 얻게 되실 것이다. 그것은 요한 묵시록 21,2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 곧 시간 너머의 시간 속에서, 삼위로 거룩하신 하느님의 빛과 사랑 안에 사는 생명으로서의 “다윗의 도성”이 영원히 완성되는 모습이다.
둘째 교훈은, 하느님께서 세계사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부드럽게, 때로는 신비롭게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점이다. 이 “첫 번째 호적”에서 세금 기반을 집계하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신이 예언된 대로 약속된 분이 다윗의 도성에서 태어나도록 상황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며, 동틀녘 미사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메시아의 탄생을 처음 증언한 이들은 위대하고 고귀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던 목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성탄 낮 미사의 복음은 신약성경 가운데서 가장 농밀하면서도 가장 서정적인 신학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곧 요한 복음의 서문(요한 1,1–18)이다. 여기서 온 역사를 구속하시는 유다인의 메시아는 “말씀”, 곧 삼위일체의 제2위와 동일시되며,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다.” 이 대목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점점 더 비이성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우리 안에 이성을 새겨 넣으셨다는 성경적 주장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곧 계시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진리들, 의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 진리들, 성화와 행복에 이르는 왕도를 닦아 주는 진리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셨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성탄의 기쁨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