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19] 성탄 시기의 Wassailing
  • 프랜시스 영 Francis Young is a British historian and folklorist. 역사학자

  • * Wassailing은 영국에서 유래한 오랜 전통으로, 새해를 축하하며 좋은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즐거운 행사를 말함.

    와셀링! 와셀링! 온 마을에 울려 퍼지네,
    우리의 건배주는 희고, 우리의 에일은 갈색이네.
    우리의 잔은 흰 단풍나무로 만들었고,
    와셀링의 잔으로 그대의 건강을 축원하며 마시네. 〈글로스터셔의 와셀링〉

    매년 1월 17일이면, 브렌던 힐스에 자리한 서머싯 주 카햄프턴 마을의 ‘The Butcher’s Arms’ 인근 과수원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곳에서 ‘wassailers’라 불리는 이들은 나무 사이를 걸어 다니며 사과주를 나무에 끼얹고, 에일과 사과주에 적신 빵 조각을 나뭇가지에 걸어 둔다.

    그들은 와셀링 노래를 부르고, 겨울잠에 든 나무들을 “깨우기” 위해 나무 위로 총을 쏘기도 한다. 노래가 증언하듯, 이 기묘한 풍습의 목적은 영국 사과주 생산의 중심지인 이 지역에서, 다음 가을에 사과나무들이 열매를 맺도록 격려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민속학자들은 와셀링을 순수한 이교(pagan) 의식의 잔재로 간주해 왔다. 인간이 나무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르며, 자연에 제물을 바치는 듯한 행위를 하고, 앵글로색슨 인사말에서 유래한 이름(고대 영어 Wæs þu hæl, “건강하기를 빕니다”라는 뜻에서 변형된 ‘wassail’)의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와셀링은 분명 오래된 관습이며, 기독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풍습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교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와셀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종교개혁에 대한 영국 민속문화의 역설적인 대응의 핵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수원을 와셀링하는 행위는 앵글로색슨인들이 했을 법한 일처럼 들리지만, 사실 정복 이전(노르만 정복 이전)의 고대 영어 문헌들 가운데 농경 주술이나 주문은 상당수 전해 내려오지만, 과일나무를 위한 주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앵글로색슨인들이 실제로 와셀링을 했다는 기록은 있다. 다만 그 대상은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고대 영어 인사말 Wæs þu hæl에 대한 응답은 drinc hæl(“건강을 위하여 마시라!”)이었으며, 이는 12세기 제프리 오브 몬머스에 의해 당시 영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쓰였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건배의 한 형태로, 와셀링 잔으로 누군가의 건강을 축원하며 마신 뒤 그 잔을 함께 나누는 관습이었다. 이런 사교적 관습이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그 자체에 종교적 성격은 없었으므로 이를 ‘이교적’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이 고대 영국식 인사 관습이 과일나무와 과수원으로 확장되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15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켄트 주 포드위치에서는 남자들과 소년들이 주현 대축일 전날(Twelfth Night, 1월 5일)에 과수원으로 가 나무를 향해 “울부짖으며” 금전적 보상을 기대했다. 이처럼 축제력의 중요한 시기에 행해지는 의례화된 구걸은 매우 흔했는데, 성탄 시기에는 가장극, 분장 행렬, 혹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형 말을 앞세운 행렬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과수원 와셀링이 처음 기록된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종교개혁 이후이면서도 여전히 가톨릭 영국의 전례적 삶을 기억하는 이들이 생존해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인들(이교든 아니든)이 과일나무를 축복하거나 주문을 외웠다는 기록은 없지만, 중세 교회에서 그러한 축복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음은 에덴동산을 언급하며 과일나무를 구원사(救援史)에 엮어 넣은 한 축복문의 예다.

    전능하신 하느님, 간절히 비오니
    새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를 강복하소서.
    죽음의 나무에서 난 열매를 먹은
    첫 조상들의 정의로운 판결로 상처 입은 우리가
    외아드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고, 모든 일에서 복을 받게 하소서.

    농작물 축복이나 해충을 쫓기 위한 구마와 같은 성물은 중세 가톨릭 영국의 농촌 생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이러한 의례들이 모두 폐지되자, 공동체는 이를 대신할 방안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 결과, 서부 지방에서는 성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 대신 여전히 축성된 공간으로 남아 있던 교회 묘지의 흙을 작물에 뿌리는 관습이 생겨났다. 또한 교회가 남긴 공백을 ‘요술사’나 ‘교활한 자들(cunning-folk)’이라 불린 민간 주술사들이 채우며, 중세 교회의 기도문과 성물에서 유래한, 어렴풋이 기억된 주문과 구마를 제공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사과나무가 더 이상 적절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불안을 느낀 농부들이, 본래 세속적인 건배와 인사의 관습이던 와셀링을 변형하여, 일종의 준(準) 의례적 나무 축복 행위로 만든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과수원 와셀링은 교회의 전례가 사라진 뒤 찾아온 ‘탈(脫)전례화’라는 문화적 트라우마에 대한 대응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교회의 의례에 의지해 살아오던 사람들이 그와 같은 위로와 확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이러한 즉흥적 의례들은, 제임스 프레이저 경의 인류학적 추측에 익숙한 현대인의 눈에는 명백히 ‘이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헤리퍼드셔의 로스온와이에서는 ‘처녀(The Maiden)’라 불리는 밀짚 인형을 과수원에서 불태우는 독특한 와셀링 풍습이 있는데, 이는 1970년대 공포영화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처녀’는 원래 ‘마리아(The Mary)’라 불렸고, 함께 불태워진 다른 밀짚 더미들은 열두 사도를 상징했다. 무엇을 ‘이교적’이라 보고, 무엇을 ‘기독교적’이라 보는가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편견에 크게 좌우된다.

    사실 과수원 와셀링은 이교도 아니고, 기독교 의식도 아니다. 이는 교회의 축복이 제공하던 전례적 위안을 어느 정도 대체한, 비종교적인 민속 관습이다. 동시에 그것은 친구의 건강을 축원하며 마시는, 영국 특유의 매우 오래된 축제적 음주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농경과 목축에 필수적인 인간과 자연 사이의 우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2-26 07:35]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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