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20] “탈자유주의”란 무엇인가?
  • R. R. 리노 R. R. Reno is editor of First Things. 편집장

  • 많은 이들은 “탈자유주의(postliberalism)”를 하나의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이해한다. 세계화된 자유주의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3년, 비판적 사상가 존 그레이는 『포스트자유주의: 정치사상 연구(Post-Liberalism: Studies in Political Thought)』를 출간했고, 이 책을 통해 이 용어는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들은 정치철학자들이 아니었다. 1980년대, 필자는 예일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필자의 여러 교수들과 동료 대학원생들은 스스로를 “탈자유주의자(postliberals)”라고 불렀는데, 이는 조지 린드벡이 1984년에 출간한 독특하면서도 큰 영향을 끼친 저서 『교리의 본성: 탈자유주의 시대의 종교와 신학』의 도발적인 부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는 “탈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신학에서의 자유주의 전통에 대한 우리의 이견을 표시했다.

    충분한 연구를 하지 못했기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자유주의(liberal)”라는 용어는 19세기 초 독일 신학을 가리키며 처음 사용되었고, “탈자유주의” 역시 처음에는 신학적 담론의 장에서 등장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자유주의”라는 말은 그리스도교 지성인이 활동하는 조건을 가리킨다. 19세기 초 독일에서는 종교 담당 정부 관리들이 대학의 신학부를 감독하고 있었다. 신학에서의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공식적 감독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 연구와 성찰은 정부나 교회 권위의 규범이 아니라 학문적 기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자유 속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 연구에 근대 역사비평 방법을 도입했다. 낭만주의나 독일 관념론과 같은 근대 사유 방식은 그리스도교 교리를 재구성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러한 혁신은 신앙을 약화시키거나 전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옹호자들에 따르면, 전승된 신앙은 협소하고 피상적이었다. 근대적 방법과 동시대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은 새로워지고 심화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자기 이해는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고 지적으로 더 책임 있으며, 더 현대적이고 적실하며, 더 개인적이고 진정성 있는 것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예일에서 필자를 가르친 교수들은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깊은 유보가 있었다. 그들은 대학 중심의 성서 연구가 성경에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 본문 “아래에” 혹은 “뒤에” 있는 것으로 관심을 옮겨갔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학자들은 “고대 이스라엘 종교”나 “요한 공동체”의 전문가가 되었다. 필자의 교수들은 “지적 책임성”이라는 이상이 의심스럽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것은 종종 학문적 유행을 뒤쫓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적실성(relevance)”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고유하고 초자연적인 요소들은 탈색되었다.

    결정적으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 의해 인도되던 주류 개신교 교회들은 영적으로 평면화되었고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패트릭 드닌이 영향력 있는 저서를 쓰기 훨씬 이전부터, 필자의 교수들은 신학의 영역에서 자유주의가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필자가 예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탈자유주의”는 중요한 부정적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신학적 기획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신뢰 상실을 뜻했다. 그리고 그 전통의 핵심 전제가 권위로부터의 자유였기 때문에,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반대 방향으로 이끌렸다.

    우리의 목표는 사고에 있어 더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이거나 현대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에 더 순명(docility)함으로써 덜 발명적이고 덜 독창적이며 덜 현대적인 사유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는 새롭고, 현대 문화의 일반적 정신에 비추어볼 때 매우 급진적인 어떤 것을 추구했다. 곧 “순명 안에서 사고하기(thinking under obedience)”였다.

    학위를 받은 뒤 필자는 20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다. 내 작업의 대부분은 신학적 준거틀 안에 머물렀지만, 나는 창의성, 독창성, 개방성, 그리고 특히 “비판적 사고”와 같은 개념들이 지니는 문화적 위신에 대해서도 더 넓게 성찰했다. 이러한 문화적·교육적 이상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은 자유주의 신학의 약속과 유사한 약속을 제시한다.

    창의성과 독창성은 사회를 생기 있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줄 것이며, 개방성은 상이한 관점과 의견들이 우리의 성찰을 풍요롭게 하도록 허용할 것이고, 비판적 사고는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사회적·역사적 배경의 협소함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유주의는 실패했다. 적어도 필자가 학부 강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보였다. 개방성의 이상은 피상성으로 이어졌고, 창의성은 자기 도취로의 초대장이 되었다. 비판적 사고는 모든 진리가 역사적·문화적으로 상대적이라는 암묵적 메시지에서 비롯되는 지적 무기력을 낳았다.

    자유주의의 교육적 실패가 필자를 압박하자, 나는 탈자유주의를 더 넓은 맥락에서 보게 되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무비판적 사랑과 헌신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순명의 약속은 삶의 많은 영역에 적용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자신을 내어맡길 때, 우리는 그 생명 부여적 능력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이는 혼인에 대해서도 참이며, 우리의 소명에 대해서도, 그리고 지성의 삶에 대해서도 참이다.

    필자는 읽은 것을 많이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20세기 말 젊은 교수 시절에 마르틴 하이데거와 존 헨리 뉴먼을 읽은 경험이 서구 문화가 위험한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내게 심어주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수용적 순명의 약속을 배척하고, 전적으로 독립적 발명 능력에 의존하려 한다. 우리는 신학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 전반에 걸쳐 자유주의 전통을 추동해온 이상과 정서만을 신뢰한다.

    순명에 대한 이 놀라운 반전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계몽주의의 표준적 서사는 진보의 이야기다. 우리는 억압적인 상속된 권위들을 뒤로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과 이성에 따라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다 덜 승리주의적인 설명도 있다.

    독일의 위대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탈주술화(Entzauberung)”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한때 우리를 순명으로 부르던 성스러운 권위들이 그 힘을 상실했다고 관찰했다. 신 없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내재된 허무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한 신들의 귀환』에서 필자는 근대성의 기원이나 탈주술화라는 우리의 조건에 대한 거대한 질문들을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20세기의 사건들에 집중하는데, 이것들이 창의성, 혁신, 규범 일탈, 그리고 “개방성”의 지배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유주의 전통의 산물인 열린 사회는 실패했다. 보호, 보존, 성별(consecration)의 오래된 명령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사랑과 헌신, 충성(loyalty)과 순명(obedience)이라는 오래된 정서들이 재등장하고 있다.

    40년 전, 필자는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 반기를 든 이들 가운데 있었다. 나의 교수들은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종교 영역에서 자유주의가 실패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서구의 지적 문화가 자유주의와 순명에 대한 거부의 영향 아래서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미묘하고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들은 자유주의가 조산시키려는 삶의 형태와는 다른, 권위와 순명에 의해 인도되는 세계 안의 삶의 방식을 가리켰다.

    오늘날 사려 깊은 이들은 자유주의가 공적 삶에서도 실패했는지 자문한다. 이러한 의심만으로도 그들은 “탈자유주의자”라는 꼬리표를 얻게 된다. 실패에 대한 의심은, 아무리 부분적이고 잠정적일지라도, 대안에 대한 성찰을 동반한다. 필자의 신학적 스승들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이러한 대안들은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권위의 회복과 순명의 재활—곧 강한 신들의 귀환—에 의존한다.

    필자 역시 스승들처럼 이 귀환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처럼, 자유주의 이후에 오는 것이 자유주의의 정반대는 아닐 것임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지니길 바란다. 탈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은 반(反)자유주의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실패한 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대안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필자의 교수들은 성경의 역사비평적 연구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나에게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했다. 오늘날의 정치적 과제도 이와 유사하다.

    필자는 수정헌법 제1조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의 책을 읽고, 자유라는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역할로 소진되지 않는 인간성의 깊이와 범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자유는 권리만으로 확보될 수 없다. 자유 역시 사랑하고, 공경하며, 섬기라는 영원한 부르심 안에서 그 힘과 의미를 발견한다.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거나(국교금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방해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막거나,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방해하거나,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하는 미국의 헌법 조항”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2-27 08:59]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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