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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최근 남포시 강서구역의 청산농장에서 진행된 결산분배모임을 두고 “집집마다 넘쳐나는 풍년의 기쁨”이라며 전형적인 성공 서사를 내놓았다.
명절 옷차림의 농민들, 들뜬 아이들,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에 잠겼다는 묘사는 익숙할 만큼 반복되어온 북한식 농촌 선전의 문법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언어의 이면에는 여전히 질문되지 않는 핵심이 존재한다.
첫째, 결산분배의 실질적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다. 보도는 농민들이 “긍지 높이 총화”했다는 감정적 표현에 집중할 뿐, 정작 농가에 실제로 분배된 곡물의 양, 국가 수매 몫, 개인 몫의 비율, 현금 보상 여부 등 기본적인 수치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의 결산분배 보도가 언제나 그렇듯, 성과를 검증 가능한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 연출로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실농군’의 헌신은 미화되지만 그 대가는 언급되지 않는다. “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표현은 농민들의 과중한 노동을 은연중에 인정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생활 개선이나 자율적 소득 증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오히려 이는 장시간 노동과 동원 체제를 미덕으로 포장하는 선전적 수사에 가깝다.
셋째, 아이들까지 동원된 장면은 축제가 아니라 체제 교육의 연장선이다. 아침잠을 설쳐가며 부모 손을 잡고 결산분배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따뜻한 가족 서사처럼 그려지지만, 실상 이는 국가 행사를 일상 속으로 침투시키는 북한 특유의 사회화 방식이다. 농업 생산의 결과를 축제로 체험하게 하는 동시에, 국가 중심의 분배 질서를 자연스럽게 학습시키는 장치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풍년’이라는 단어는 반복되지만 식량난의 구조적 문제는 지워진다. 일부 협동농장의 결산분배 장면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지역·계층 간 식량 접근성 격차, 시장 의존도의 확대, 농촌 주민의 만성적 영양 불균형 문제는 기사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이는 부분적 사례를 전체 현실로 일반화하는 전형적인 선전 기법이다.
결국 이번 보도는 농업 생산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연례적 의례 보도에 가깝다. ‘집집에 넘쳐나는 풍년의 기쁨’이라는 문장은 실제 농민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기보다, 국가가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을 정교하게 연출한 무대 배경에 불과하다.
진정한 풍년은 수사가 아니라, 주민들의 식탁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