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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이른바 ‘헌법절’을 맞아 성대한 국기게양 및 선서의식을 진행했다고 선전했지만, 그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헌법의 존엄을 기리는 국가행사라기보다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집단적 충성의례에 가깝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12월 2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김정은이 직접 참석했고, 당·정부·군·사법기관의 고위 간부들이 대거 동원됐다. 형식은 ‘헌법절 기념행사’였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헌법의 정신이나 조항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지도자의 선서를 선창으로 한 일방적 결의와 찬양으로 채워졌다.
통상 헌법은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최고 규범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행사에서 헌법은 권력을 통제하는 기준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활용됐다.
특히 국가수반이 헌법에 대해 ‘선서’를 하고, 이에 모든 참가자가 일제히 복창하는 장면은 헌법이 인민 위에 군림하는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헌법이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제한하는 장치가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사상’과 ‘노선’을 법적으로 포장하는 장식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북한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통신은 헌법을 “진정한 인민의 법전”, “위대한 정치헌장”이라 치켜세웠다. 그러나 현실의 북한에서 헌법은 인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 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물론, 생존권조차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헌법을 인민의 권리 선언으로 부르는 것은 공허한 언어의 유희에 가깝다.
법은 존재하지만 법치가 없고, 헌법은 있으나 헌정질서는 부재한 체제가 바로 북한이다. 헌법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헌법절을 성대히 기념하는 행위는, 법의 실질을 가리기 위한 의식화된 정치연출일 뿐이다.
이번 행사는 국기와 헌법을 ‘성스러운 대상’으로 신격화하는 북한 특유의 정치문화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국기는 국가공동체의 상징이지만, 북한에서는 체제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는 의례적 도구로 기능한다. 헌법 또한 시민적 계약이 아니라, 지도자의 통치 이념을 절대화하는 상징물로 소비된다.
이처럼 헌법·국기·지도자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방식은,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정상화하고 비판을 원천 차단하는 전체주의적 통치술의 전형이다.
결국 이번 ‘헌법절 기념행사’는 헌법의 날이 아니라, 충성의 날이었다. 헌법을 통해 권력을 묻는 자리는 사라지고, 헌법을 앞세워 권력에 복종할 것을 다짐하는 장면만이 남았다.
헌법이 살아 있으려면 선서가 아니라 집행과 책임이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헌법절은 다시 한 번 이를 증명했다. 그곳에서 헌법은 법이 아니라, 체제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선전 구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