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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병사 |
암 4기 환자와 중증 장애를 앓는 병사들까지 최전방 전투에 내몰고, 비리를 덮기 위해 ‘자살 돌격’을 강요했다는 러시아군 내부 고발이 잇따라 공개됐다.
병사와 가족들이 제기한 민원 문서가 러시아 인권 당국의 관리 실수로 외부에 노출되면서, 병영 내 인권침해와 부패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9월 접수한 민원 서류를 한동안 온라인에서 열람 가능하게 방치했고, 이 과정에서 군 관련 민원 1,500여 건이 외부로 유출됐다. 독일 베를린에서 발간되는 러시아어 온라인 매체 ‘에코’의 창립자 겸 편집인 막심 쿠르니코프와 취재진이 자료를 확보해 NYT에 전달했다.
문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례들이 담겼다. “한겨울에 발가벗긴 채 수갑을 채워 나무에 묶어두고 다음 날 아침까지 방치됐다”, “다리에 감각이 없는데도 전투 임무를 수행 중이다”, “수저를 들 힘조차 없는데 다시 ‘특별군사작전’에 투입된다”는 호소가 잇따랐다. 동료 병사를 구타해 돼지우리 인근 구덩이에 가둔 사례도 포함됐다.
NYT는 일부 지휘관들이 전사 위험이 큰 임무에서 빠지고 싶다면 뇌물을 내라고 요구했으며, 비리 사실을 아는 병사들을 증거 인멸 목적으로 고의적인 자살 공격 작전에 투입하거나 사살을 명령했다는 증언이 다수 확인됐다고 전했다. 내부에서는 이를 ‘옵눌레니예(0으로 맞추기)’라고 불렀다.
의학적으로 정상 복무가 불가능한 병사들에 대한 가혹행위도 반복됐다. 팔다리 골절, 암 말기, 뇌전증, 중증 시·청각 손상, 두부 외상, 조현병, 뇌졸중 후유증을 앓는 병사들까지 전선으로 보내졌고,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된 직후 다시 최전방에 투입된 사례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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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크레미나 인근에서 자신과 동료가 나흘간 수갑을 찬 채 나무에 묶여 있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가족에게 보냈다. 음식과 물, 화장실 접근이 모두 차단된 상태였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사수 중인 지역으로 들어가 러시아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 오라는 ‘돌아올 수 없는’ 임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받은 어머니는 러시아 인권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며 “이들은 짐승이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또 다른 18세 병사는 전투 투입 직전 눈물을 흘리며 촬영한 영상을 어머니에게 보내 “며칠 내 연락이 끊기면 영상을 공개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휘관 지시로 병사들로부터 1만5천 달러를 모아 뇌물로 전달했지만, 이후 오히려 자살 공격 임무에 배치됐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실종 상태로 분류돼 있으며, 어머니의 살인 혐의 수사 요청은 시신 미발견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NYT는 사실 확인을 위해 민원인 240여 명과 접촉했고, 75명이 민원 접수 사실을 확인했으며 수십 명이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일부는 영상·사진·녹음, 의료 진단서, 법원·군 내부 문서 등 증빙자료도 제출했다. 민원인의 신원은 이메일과 전화번호, 공개 정보 대조로 검증됐다.
전문가들은 “전쟁 장기화 속에서 병력 손실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구조적 부패가 병영 전반에 만연했음을 보여준다”며 “국제사회 차원의 독립적 조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두·희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