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7월 4일, 제2차 대륙회의의 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채택한 바로 그날, 막 탄생한 신생 국가를 상징할 국가 인장을 제정하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세 차례의 위원회와 여섯 해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결과물은 독수리가 얹힌 국가 문장과, 뒷면에 ‘섭리의 눈(Eye of Providence)’이 그려진 피라미드를 포함한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 초안, 특히 위원회의 초기 구성원이었던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이 제출한 안은 훨씬 더 노골적으로 그리스도교적 상징을 담고 있었다.
프랭클린의 구상은 다음과 같았다.
바닷가에 서서 손을 바다 위로 뻗어 파라오를 덮치게 하는 모세의 모습,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손에는 칼을 든 채 열린 전차에 앉아 있는 파라오. 구름 속 불기둥에서 뻗어 나오는 광선이 모세에게 닿아, 그가 신적 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제퍼슨의 초안은 프랭클린의 구상과 거의 동일했으나, 인장의 뒷면에 대해 “우리가 그들로부터 혈통의 명예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정치 원리와 통치 형태를 계승한 색슨족의 지도자 헹기스트와 호르사”를 제안했다. 이 두 건국자는 최종 결과물에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완성된 인장에는 여전히 섭리에 대한 언급과 함께 “annuit cœptis 그분께서 우리의 시도를 호의로 보셨다” 라는 라틴어 문구가 포함되었다.
미국 건국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세속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제퍼슨과 프랭클린이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언어를 고집했다는 사실은, 미국이라는 기획이 실상 얼마나 비(非)세속적인지를 보여 주는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독특한 실험을 시작한 이들은 유럽의 오랜 교회–국가 결탁의 역사와 이른바 종교전쟁의 상처를 알고 있었기에, 국가 차원의 국교회 제도에는 강한 거부감을 지녔다. 그러나 두터운 개신교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오늘날 그들의 이름으로 설파되는 세속주의를 결코 자신들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을 보라. 그는 “양심은 모든 재산 가운데 가장 신성한 것”이라고 썼고, 초기 침례교 지도자 아이작 배커스와 존 렐런드의 영향을 받아 권리장전을 기초하고 옹호했다. 그럼에도 매디슨은 새 나라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1812년 전쟁 한가운데서 그는 기도의 날을 선포하는 포고문을 발표하며, “나라들의 복지와 운명이 달려 있는 전능하신 권능”께로 돌아설 것을 촉구했다. 매디슨은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할 것을 권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자비로 굽어보시고, 우리의 수많은 죄과를 용서하시며, 회개와 삶의 쇄신이라는 건전한 지향을 모든 이 안에서 일깨우고 굳세게 해 주시기를.. 이 시련과 재난의 때에 공적인 논의의 자리에 특별히 함께하시고, 모든 시민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과 형제적 애정, 그리고 상호 신뢰를 불어넣어 주시어, 우리가 안으로는 안전하고 밖으로는 존중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했다.
종교에 대해서는 가장 냉담한 시각을, 자유에 대해서는 가장 광범위한 이해를 가졌던 제퍼슨조차도, 첫 취임 연설에서 “인간의 현세적 행복과 내세의 더 큰 행복을 기뻐하심을 당신의 모든 섭리로 증명하시는 지배적 섭리”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축복을 지니고서, 우리를 행복하고 번영하는 백성으로 만드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확실히 이들은 국가 차원의 국교회 제도에는 반대했고, 논쟁과 개정을 거쳐 각 주의 국교회도 점차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종교의 국가적 수립은 곰과 같아서 성인들을 끌어안지만, 그리스도교를 타락시키고 국가 정책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고 말한 존 렐런드 같은 설교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이해는 주로 개신교적이었지만, 조지 워싱턴이 로드아일랜드 히브리 회중에 보낸 서한에서 보듯 유대인 시민들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주 헌법에는 일반적 유신론에 대한 인정이 담겼고, 연방 헌법에는 종교 시험을 거부하는 원칙이 자리 잡게 되었다.
헌법을 평가하며, 저명한 법학자이자 연방대법관이었던 조지프 스토리는 공화국의 성공을 위해 종교—어쩌면 그리스도교—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국가가 신앙을 강제하는 것에 대한 거부 사이의 긴장을 요약한다. 그는 『헌법 주석서』에서 “종교의 위대한 교리들을 선포하는 일은 잘 정돈된 공동체에서 결코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썼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권리장전을 칭송하며 “양심의 권리는 실로 어떤 인간 권력도 정당하게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며, 인간의 권위로 침범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역사 전반에 걸쳐 국가가 양심을 규제하는 권력을 행사해 온 방식이 박해와 폭정의 도구였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늘날 이 긴장은 우리의 국가적 논쟁의 핵심에 놓여 있다. 구세계의 종교전쟁에 상처 입었던 건국 시대의 인물들과 달리, 우리는 근대성의 산물과 세속주의의 거짓 약속에 상처 입어 있다. 20세기 사법은 매디슨이 말한 교회와 국가 사이의 “분리선”에서, 제퍼슨이 덴버리 침례교도들에게 보낸 서한을 오해하여 도출한 에버슨 대 교육위원회(1947)의 “높고 난공불락의 분리의 벽”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수십 년 동안 제정조항을 무기화하여 종교에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판례들이 쌓였다.
다행히 최근 수십 년 사이, 보다 원전주의적인 법원은 정부와 종교 사이의 어떤 부수적 접촉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게 만들었던 ‘레몬 테스트’를 걷어내고 있다. 케네디, 하비 로비, 트리니티 루터런, 풀턴과 같은 최근 판결들은 종교 단체가 단지 종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논쟁은 계속된다. 세속주의가 말하는 ‘중립적 공적 광장’은 온갖 왜곡된 이데올로기로 채워졌고, 사회적 계약은 약화되었다. 우리는 덕이 없는 사회,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두터운 그리스도교를 상실한 사회에 대한 건국자들의 경고를 잊었다. 존 애덤스의 말이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의 헌법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백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외의 어떤 이들을 통치하기에는 전적으로 부적합하다.”
해답은 25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헌정 질서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이 나라를 세운 이들은 양심을 짓밟을 권력을 지닌 국가를 정당하게 두려워했다. 침례교와 장로교 신앙고백에 울려 퍼지는 “양심의 주님은 오직 하느님뿐”이라는 선언은, 신앙을 강제하려는 정부들에 여전히 유효한 경고다.
예수께서 카이사르에게는 일부만을 돌리라고 하신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다. 카이사르는 제대로 된 우편 제도 하나 운영하기도, 건전한 예산 하나 통과시키기도 벅차다. 권리가 비롯되는 하느님이 아니라 국가가 양과 염소, 가라지와 밀을 가려낼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이러한 권력을 가진 국가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 가운데 어떤 부분을 훼손해 왔음을 보여 준다.
칼끝에서 이루어진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체제를 요구하는 가장 목소리 큰 이들이 그 권력을 맡아도 될 만큼 신뢰를 준다고 보기도 어렵다. 허세 가득한 밈 제작자들과 이른바 ‘그리스도교 군주’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타락한 세상에서라면, 필자는 미국의 실험에 나의 운을 걸겠다.
그러나 종교 자유를 자랑스럽게 옹호하고 신정적 기획을 거부하는 우리 역시, 이 실험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두터운 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해 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예컨대 21세기 초, 진보적 사회운동이 부상하던 시기에, 선의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문화적 그리스도교의 종말을 환영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틀에서는 세속주의가 참된 신자와 위선자를 구별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이 합의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더 나쁘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적 그리스도교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매우 종교적이었던 니코데모에게 하신 말씀처럼 여전히 말해야 한다. “너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남침례교 신학자 앤드루 워커는 이렇게 쓴다.
문화적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애도한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교적 합의의 상실만이 아니라, 세속 사회가 빌려 쓰고 있던 공통 은총에서 비롯된 사회적 자본의 상실을 애도하는 것이다. 세속성이 확산되면서 미국 시민사회가 속 빈 강정이 되어 가는 것이 놀라운 일인가? … 사회가 그리스도교적 토대를 벗어날수록 인간 번영에는 심각한 손상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를 애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의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의 선도 원한다.
건국자들은 자유라는 틀 아래에 덕성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두터운 층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지지해야 하며, 그리스도교 군주를 헛되이 꿈꾸거나 세속주의 속에서도 자유가 살아남을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하기보다, 교회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영적 쇄신을 위해 일하고 기도해야 한다. 종교 자유를 탁월하게 옹호했던 윌리엄 펜의 말처럼 말이다.
“순종 없는 자유는 혼란이며, 자유 없는 순종은 노예 상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