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33] 사제직에 관해 레오 교황이 올바르게 짚어낸 것들
  • 토머스 G. 과리노 Rev. Msgr. Thomas G. Guarino is professor emeritus of systematic theology at Seton Hall University and the author of The Unchanging Truth of God? Crucial Philosophical Issues for Theology. 몬시뇰, 조직신학 명예교수

  • 지난달 레오 14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두 개의 잘 알려지지 않은 교령, 곧 사제의 삶과 직무를 다룬 사제생활교령과 사제 교육과 양성에 관한 사제양성교령 공포 60주년을 기념하여 「미래를 낳는 충실함」이라는 사도적 서한을 발표하였다.

    솔직히 말해, 이 두 교령 가운데 어느 것도 가톨릭 교회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제생활교령의 후반 초안 작업에 참여하도록 요청받았던 신학자 이브 콩가르는 공의회 중에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이 교령이 충분히 신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이지 못한 채, 지나치게 경건하고 장황한 문서가 될까 두렵다.”

    그리고 공의회가 폐막된 지 10년 뒤인 1975년, 그는 다시 이렇게 평했다. “공의회 교부들은 사제들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분명 하나의 텍스트는 있었지만, 매우 평범하고, 서투른 메시지였으며, 공의회 말기에 서둘러 작성된 것이었다. 나는 항의했다. 사제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계가 아니라, 오늘의 세계에서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공의회 교령들에서 좋은 결실을 찾아내고, 콩가르가 갈망했던 바—곧 오늘날 사제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명확한 진술—를 보다 충실히 그려내려는 레오 교황의 시도는 따뜻한 찬사를 받을 만하다.

    교황은 이 교령들 안에 담긴 몇 가지 핵심 주제들을 강조한다. 성품으로 부여된 직무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의 선물이라는 점, 자신의 소명에 대한 충실함은 스승 곁에 머무를 때 굳건해진다는 점, 충실한 삶은 “날마다 이루어지는 회개의 여정”이라는 점, 그리고 영적 형성은 평생에 걸친 과정이라는 점이다. 사제들은 “매일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름받았으며, 주님께 모든 신뢰를 두고 “풍요롭고 견고한 영적 삶”을 발전시켜야 한다.

    교황은 또한 사제적 형제애와 친교를 강하게 강조하면서도, 그러한 형제애는 “각 개인과 주님께서 각자에게 베푸신 은사나 재능을 획일화함으로써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지혜롭게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남긴 다음의 통찰을 떠올렸다.

    사람들 사이의 정당한 평등에 대한 열정과 함께, 모든 사람을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타락한” 평등 개념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레오 교황은 각자의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왜곡된 형제애 개념을 현명하게 배제한다. 이 사도적 서한은 분석 면에서 매우 풍성하다. 여기서는 이와 연관된 몇 가지 신학적 논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레오 교황의 서한에는 사제를 봉사의 사람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봉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사제를 교사로서 다루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너그러운 봉사는 성품 직무의 핵심에 속한다. 그러나 사제생활교령은 사제들이 “모든 교리가 바람처럼 흔들리며 신자들을 휩쓸고 가지 못하도록, 진리를 굳세게 옹호하는 이들”이어야 한다고 분명히 강조한다.

    또한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Lumen Gentium)—사제직에 대한 모든 성찰의 중심 문서라 할 수 있는 이 헌장—은 “직무 사제는 자신이 지닌 거룩한 권능으로 사제적 백성을 형성하고 다스린다”고 말함으로써 사제의 가르침 직무를 분명히 한다. 하느님 백성을 형성하는 사제의 가장 주된 방식은 바로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사제를 교사로서 조명하는 핵심적 역할이 이 문서에 추가되었더라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레오 교황이 사제의 봉사가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의 동등한 존엄성과 형제애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며 평등주의적 어조를 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사제들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세례성사로 받은 소명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이들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듯, 모든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지만, 직무 사제직은 세례 사제직과 “본질에서,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덧붙였더라면 유익했을 것이다. 이 표현은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사제의 직무가 언제나 신자들을 향해 있지만, 제대 앞에서 유일한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고유하게 서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독자적 지위를 주장하는 것은, 레오 교황이 마땅히 배격하듯, 사제적 “지배”나 성직자적 “고양”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사제 정체성을 규정하는 결정적이고도 본질적인 요소이다.

    레오 교황은 또한 사제생활교령의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같은 사제직과 직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친교 때문에, 주교들은 사제들을 형제이자 친구로 여겨야 한다.” 미국인인 레오 교황은, 2022년에 발표된 ‘미국 가톨릭 사제 전국 조사’가 미국 내에서 사제들과 주교들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함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주로 달라스 헌장의 가혹한 시행 때문이었다. 비록 이 서한이 그 문제를 다룰 자리는 아니었지만, 교황이 미국 주교들에게 두 가지 과제를 분명히 지시했기를 바란다. 하나는 실제로 발생한 학대를 철저히 근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거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고발로 혐의를 받게된 사제들에게도 정당한 절차가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고발된 사제들이 적법 절차에 따라 정의롭게 대우받도록 보장하는 일은, 이 서한 말미에서 레오 교황이 힘차게 권고하는 사제 성소의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

    사제양성교령이 제시하는 가장 지혜로운 권고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사제 생활의 어떠한 어려움도 신학생들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 내가 가르치던 시절, 달라스 헌장과 그 ‘필수 규범’을 논의하기 전에 이 공의회 문구를 자주 인용하곤 했다.

    신학생들은 헌장 시행이 초래하는 장애물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사제직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나는 서품을 받은 뒤 여러 해가 지나서야, 학대 혐의로 고발되기만 해도 사제에게 가해질 수 있는 가혹한 처벌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를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레오 교황의 사도적 서한은 많은 주제에 대해 견고한 가르침과 현명한 성찰을 제공한다. 나는 언젠가 교황이 사제직에 대해 보다 전면적이고, 깊이 신학적인 회칙을 발표하기를 희망한다. 교회의 전 역사와 전통을 포괄하는 그러한 문서는, 현재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는 이 직무에 큰 유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1-09 07:4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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