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36] 무과실 이혼이 아이들을 ‘상품’으로 전락시킬 때
  • 칼 R. 트루먼 Carl R. Trueman is a professor of biblical and religious studies at Grove City College and a fellow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윤리·공공정책센터 연구위원

  • * No-Fault Divorce (무과실 이혼)은 배우자가 간통이나 학대 같은 잘못을 입증하지 않고도 단순히 “화해할 수 없는 차이”, ‘부적합성’ 또는 “회복 불가능한 파탄”을 근거로 결혼을 종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적 절차. 책임 소재를 규명할 필요가 없어 이혼 절차를 덜 갈등적이고 신속하며 사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함.

    필자가 곧 출간할 저서 『인간의 모독(The Desecration of Man)』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체외수정(IVF)과 대리모 출산과 같은 현대의 생식 보조 기술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훼손해 왔는지를 다루는 대목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이러한 시술을 추구하는 이들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곧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또 다른 인간에게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고자 하는 열망이다. 자녀라는 축복을 받은 나 같은 사람에게조차, 누가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체외수정이나 대리모 출산의 정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곧바로 냉혹하다거나, 심지어 이러한 방식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인간성을 부정한다는 비난에 노출되기 쉽다.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늘 같았다.

    필자는 그러한 아이들의 인간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문제의 시술 방식 자체가 사회로 하여금 아이들을 ‘상품’으로 바라보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법의 관점에서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재산의 일부, 곧 ‘사물’에 유비되는 존재가 된다. 이는 생식이 전통적 맥락에서 분리됨으로써 발생하는 수많은 복잡한 상황들에 법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지닐 경우, 누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지는가? 난자와 정자를 제공한 사람들인가, 아니면 자신의 태 안에서 아이를 품고 있는 여성인가? 시술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 아이의 낙태를 원할 경우, 그들이 대리모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더 나아가, 머지않은 미래에 다른 신체 세포로부터 아이를 상업적으로 만들어내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체외수정이나 대리모 출산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인간성을 결코 부정한 적이 없다. 실상 아이들의 인간성을 위협하는 것은 이 시술들에 대한 비판자들이 아니라, 바로 그 시술들 자체다. 그것들은 문화적 상상력을 서서히 이동시켜, 아이들을 무엇보다 먼저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법률에 의해 규정되고 처분될 수 있는 ‘사물’, 곧 자연법이 아니라 실정법의 지배를 받는 재산으로 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원은 생식 기술 그 자체에 있는가,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의 다른 영역들에서 진행되어 온 변화들이 이러한 기술을 그럴듯하게 만든 것인가? 필자의 원고를 미리 읽은 한 친구는 흥미로운 지점을 제기했다.

    서구에서 무과실 이혼 제도가 도입된 것이, 이 모든 대상화의 과정을 실질적으로 촉발시킨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혼을 감정적이고 효용적인 계약으로 재정의한 이 제도가 동성혼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무과실 이혼은, 이전에는 극단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던 관점을 문화적 상상력의 일상적 일부로 만들어 버렸다. 곧 아이들과 부모와의 관계가 법정에서 결정되어야 할 ‘재산 조각’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다.

    이 지적은 매우 날카로우며, 결혼이 인간됨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임을 상기시킨다. 결혼의 정의나 기능에 가해진 변화는 가정 내부에만 국한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더 넓은 인간학적 질문에 변형적 영향을 미친다. 어느 사회에서든 결혼에 대한 실제적 정의는, 그 사회가 인간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결혼을 감정적·계약적 유대로 만들어 버리면, 그 결실인 자녀와의 관계, 곧 부모됨(parenthood) 역시 재정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컨대, 가장 근본적인 인간 관계들을 기초적 차원에서 수정해야만 한다. 무과실 이혼이 일상화된 세계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마저 계약적 관계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및 유대교)의 관점이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인간됨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 개정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의 모상을 수정하면,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이해 또한 수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10년은, 특히 생식의 영역에서, 수많은 새로운 도덕적 도전들이 사람들의 삶으로 쇄도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 교회들은 생식 보조 기술 문제에 있어 특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가톨릭이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생식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수많은 신자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또 아무런 제약 없이 거부되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적 스캔들이다. 또한 자녀를 낳은 결혼에 대해 무효 선언(혼인 무효)이 내려지는 현실은, 적어도 개신교인인 필자의 눈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에 대해 제시하신 훨씬 더 엄격한 가르침과 비교할 때 다소 문화적으로 편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문제들은 가톨릭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다. 필자의 개신교 세계 역시 나름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개신교는 인간의 목적론에 대한 감각을 거의 상실했고, 생식을 철저히 실용적·공리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체외수정이나 대리모 출산 문제에 대해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조차 알고 있을까?

    더 나아가 어떤 결론에 이르러야 할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다시 내 친구의 지적로 돌아가면, 오래전에 무과실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태도는 결혼의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학 자체의 생태계까지 변화시켰다.

    교회가 오랫동안 ‘인간을 모독해 온’ 결과가 이제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혼 법제를 수용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아이들을 ‘사물’로 바라보도록 압박해 온 방식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대중의 반감을 사고, 고통스럽고, 직관에 반하는 입장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결단 없이는, 체외수정과 같은 생식 기술들에 대해 명료하게 사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1-12 07:2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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