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37] 참된 인간들 ①
  • 스티븐 M. 바 Stephen M. Barr is professor emeritus of physics at the University of Delaware and president of the Society of Catholic Scientists. 가톨릭 과학자 협회 회장

  • 가톨릭 교회는 진화 이론을 결코 단죄한 적이 없으며, 그렇게 할 뻔한 적조차 없었다. 이는 오히려 의외로 보일 수도 있다. 두 세기 앞선 갈릴레이 사건으로 이어졌던 많은 요인들이 다시금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갈릴레이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게 보였고,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성경의 특정 구절들의 “문자적 의미”에 반하는 듯한 급진적 이론을 제시했다. 두 이론 모두 처음에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이었고, 관측적·이론적으로 중대한 과학적 반론에 직면했는데, 이는 수십 년이 지나서야 해소될 수 있었다. 두 이론 모두 가톨릭 신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일부 측면과 충돌했다.

    마지막으로, 갈릴레이와 다윈은 모두 교회가 자신의 신뢰성과 권위에 대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던 시기에 이론을 공표했으며, 그 결과 교회의 교리적 방어 기제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바티칸의 갈릴레이 단죄가 교회를 교리적으로 공식적이고 돌이킬 수 없게 구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교회를 과학적 쟁점에서 잘못된 편에 서게 만들었다. 같은 일이 『종의 기원』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진화 이론이 직면한 상황이 갈릴레이가 겪었던 것보다 더 불리했다. 갈릴레이의 문제적 사상은 천문학에 관한 것이었고, 당시 벨라르미노 추기경조차 그것이 신앙과는 “부수적으로만” 관련된다고 인정했다. 반면 인간에게 적용된 진화 이론은 인간의 본성이나 원죄 교리와 같은, 신학적으로 가장 중대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었다.

    더구나 갈릴레이 시대에는 지동설이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고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자 종교적 회의주의와 과학적 유물론이 많은 지지자를 얻었고, 진화는 종교를 공격하는 곤봉처럼 사용되었다. 그 결과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사상과 그것을 옹호하는 이들을 깊이 의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의 단죄는 결코 내려지지 않았다. 사실 교회의 보편 교도권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지 90년이 넘은 195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러한 신중함의 한 이유는 교회 당국이 과학이 이미 지동설을 확증했음을 잘 알고 있었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난 세기 동안의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견은 지구와 그 위의 생명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을 때 암시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성 아우구스티노 이래로 가톨릭 교회에서 받아들여져 온 원칙, 곧 성경은 이성과 경험으로 확실히 알려진 사실에 반하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진화에 대한 교회의 인내는 실로 주목할 만하다.

    교회가 진화 이론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전모는 미네소타의 성 토마스 대학교 철학 명예교수인 케네스 W. 켐프의 훌륭한 신간에서 잘 서술되어 있다. 『가톨릭 진화론의 기원, 1831–1950』은 방대한 연구에 기초하고, 포괄적이며, 세심하고, 판단에 있어 절제되어 있고, 명료하게 쓰인 기념비적 학술서이다.


    이 책은 어떤 형태로든 진화론을 옹호했거나 적어도 가톨릭 신앙과의 양립 가능성을 변호했던 수많은 가톨릭 과학자·신학자·철학자들의 사상과, 그 사상들이 교회 내부와 교도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다룬다. 켐프는 가톨릭 진화론자들과 양립론자들의 저작들부터, 동시대 가톨릭 정기간행물·백과사전·신학 교과서·바티칸 내부 심의 문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1차 사료에 정통해 보인다.

    교회의 자제력에 결정적인 요인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에 대한 당시 교황들의 신중함이었을 것이다.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1871년에 『인간의 유래』를 출판했을 때 재위 중이던 교황은 비오 9세였다. 그는 1864년 『오류 목록』에서 근대 세계의 80가지 오류를 규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80가지 가운데 진화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비오 9세가 1869년에 소집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령들에서도 진화는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은 네 명의 교황들, 심지어 격렬한 반(反)근대주의자였던 비오 10세까지도 진화에 대해 어떤 선언도 하지 않았다. 비오 9세의 직계 후임자인 레오 13세의 경우, 그 이유는 켐프가 인용한 1892년의 한 사적 서한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직 불확실한 사안들에 대해 로마 성성(聖省)들이 선언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성급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에 반대하며, 학자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없기에 그들을 저지할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거나 심지어 실수를 할 시간도 주어야 한다. 종교적 진리는 그로 인해 오히려 이익을 얻을 뿐이다. 교회는 언제나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다.”

    진화를 뿌리째 단죄하기를 원한 “까다로운 사람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다수파는 아니었다. 진화라는 과학 이론과 그것이 제기하는 철학적·신학적 문제들에 관해 교회 전반에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태도가 존재했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1-13 08:12]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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