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회적 변화가 언제나 엘리트 계층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서구 세계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맥도널드–로리에 연구소 행사에서 질의응답을 받던 중, 역사학자 나이얼 퍼거슨은 뜻밖의 예측을 내놓았다.
“나는 우리가 아마도 그리스도교적 부흥의 아주 초기 단계에 들어서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재각성은 너무나 큰 해악을 낳아온 ‘각성주의(awokening)’에 대한 해독제가 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영국을 둘러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만일 그들이 성당(교회)에 가서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합니다.”
열여섯 권의 저서를 낸 퍼거슨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20년 전, 이른바 ‘신무신론(New Atheism)’이 격렬하고 소란스럽게 확산되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이 정도의 위상을 지닌 인물이 이런 발언을 하리라고, 더구나 그것을 “단순하다”고 표현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퍼거슨의 아내 아얀 히르시 알리는 당시 저명한 무신론자였지만, 2023년 바이럴 칼럼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히르시 알리는 그 칼럼에서 개종의 이유를 주로 문명사적·문명적 차원에서 설명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심지어 공개서한을 보내 그녀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알렉스 오코너와의 대화, 그리고 도킨스와의 공개 토론에서 히르시 알리는 자신의 개종이 알코올 문제를 포함한 심각한 개인적 위기 이후에 이루어졌음을 설명했다. 그제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도킨스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퍼거슨과 히르시 알리는 2023년 두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고, 퍼거슨은 밴쿠버의 청중에게 자신들이 이제 “신앙을 실천하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이탈한 무신론자(lapsed atheist)”라고 설명하는데, 부모가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난 뒤 세속적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 여정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그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무신론을 토대로 성공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보수적 인식의 소유자이자, 도킨스가 스스로를 표현했던 말인 “문화적 그리스도인”의 의미에서 그는 전통에 대한 존중 차원으로 가끔 교회를 찾곤 했다.
그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신앙이 개인적 차원으로 들어왔다. 다만 퍼거슨은 2024년 『The Australian』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 사람은 이성만으로 하느님께 이르지는 못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언뜻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주장들이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입니다.”
퍼거슨의 이야기는 믿고자 하지만, 현대적 이성이 초자연적 진술을 받아들이도록 스스로를 강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많은 지식인들의 투쟁을 축약해 보여준다. 찰스 테일러는 그의 기념비적 저작 『세속의 시대』에서 전근대 사회의 “신앙의 방벽”을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던 문화적·사회적 구조와 삶의 경험들이었다.
반면 조지프 미닉은 2023년 저서 『불신의 방벽: 세속 시대의 무신론과 신적 부재』에서, 오늘날의 사회는 그와 정반대의 조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많은 지식인들은 “불신의 방벽”과 씨름하며, 믿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그 한 사례가 『성 혁명에 대한 반론』의 저자인 작가 루이즈 페리다. 그녀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 책을 집필하며 조사하던 중 “내 의지에 반하여 그리스도교적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열세 살 때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읽었고, “열세 살이었기에 그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그녀가 보기에 그리스도교는 사회학적으로는 참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문명적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초자연적 차원에서도 참일까?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솔직히 인정했다. 그녀와 남편은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간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갈등한다.
“어떤 주에는 믿고, 어떤 주에는 믿지 못합니다.”라고 페리는 말했다. 그녀는 세속적 가정에서 자란 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걱정한다. 그럼에도 그녀와 남편은 아이들을 그리스도교 학교에 보내고자 한다. 아이들에게 “두 가지 진리를 모두 믿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곧 그리스도교가 사회학적으로도, 초자연적으로도 참이라는 믿음을—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앞서 『First Things』에 기고한 다른 칼럼에서 내가 언급했듯, 페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의 문명적 가치를 인정해온 찰스 머리는 지난해 출간된 『종교를 진지하게 대하기』에서 자신의 지속적인 내적 투쟁을 고백하며 이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더글러스 머리, 톰 홀랜드, 조던 피터슨 역시 이 문제들과 씨름해왔다. 피터슨의 혼란스러운 2024년 저서 제목은 이 상황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하느님과 씨름하는 우리』.. 물론 역설은 분명하다. 하느님과 씨름하는 자는 반드시 져야 한다. 체스터턴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논리학자는 하늘을 자기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사람이다. 그리고 갈라지는 것은 그의 머리다.”
배운 이들이 자신의 지성마저 하느님께 복종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나이얼 퍼거슨은 이 사실을 이해하는 듯하다. 그는 지금 성당의 의자에 앉아, 배우고 있다.
“이전에 성당에 다니지 않다가 이제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람으로서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가 말했다.
“성가 한 곡 한 곡마다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단서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주는 교육적 유익이 도덕적 유익—마음이 고양되고,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리셋’되는 감각—에 거의 필적한다고 생각합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