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46] 『뉴요커』 팩트 체크
  •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윤리 및 공공정책센터 석좌 선임연구위원

  • 한때 『뉴요커』가 미국의 진지한 저널들 가운데 문학적 우아함의 기준을 세우던 시절에는, 매서운 눈매의 편집자들이 집요하게 수행하던 광적인 사실 검증 때문에 필자들이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뉴요커』는 더 이상 예전의 『뉴요커』가 아니다.

    그 증거는 폴 엘리가 최근 발표한 장황한 글, 「최초의 미국인 교황의 탄생」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이 글에는 교황 프란치스코 재위 말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논평가 조지 바이겔은 차기 교황에게 보수 진영이 기대하는 자질을 개괄한 짧은 책을 썼고, 2020년에 뉴욕 대교구장 티모시 돌런 추기경이 차기 콘클라베에서 투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추기경들에게 그 책을 보내도록 주선했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묻고 싶다. 내가 그대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하나씩 세어 보자.

    1. 교회가 21세기의 “대전략”으로서 ‘새 복음화’를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책이, 어떻게 주류적이고 살아 있는 가톨릭이 아니라 “보수 가톨릭”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2. 같은 맥락에서, 교황직이 그리스도교적 인문주의를 증진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한 교회의 수용을 심화하며, 주교 선출 과정에서의 협의를 확대하고, 신학교 개혁을 강화하며, 평신도 남녀가 선교적 제자가 되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로마 교황청에 대해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하며, 일치 운동과 종교 간 대화의 신학을 심화할 것을 요청하는 책의 내용을 두고, 가톨릭 “보수파”와 그들의 소망을 경고하듯 언급하는 것이 과연 그 책의 실질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가?

    3. 로마 주교에게, 육화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인간 삶의 물음에 대한 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에 14억 인류가 시선을 고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어떻게 “보수적”일 수 있는가?

    4. 구체적인 사실 검증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만일 폴 엘리나 그의 편집자들이 필자나 돌런 추기경, 혹은 이그나티우스 출판사의 대표 마크 브럼리에게 연락했더라면, 필자의 책 『차기 교황: 베드로 직무와 선교하는 교회』가 이그나티우스 출판사에 의해 추기경단 구성원들에게 발송되었으며, 돌런 추기경이 이를 주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가 단지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취지의 간단한 추천 서한을 덧붙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엘리의 진보적 가톨릭 인맥이 만들어낸 이 사안에 대한 왜곡은 이미 여러 차례 바로잡혔음에도, 검토조차 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을 확인하면 자극적인 경고 문구나 미국의 저명한 성직자를 향한 일격이 무뎌질 수 있는데, 굳이 왜 사실 검증을 해야 하겠는가?

    엘리의 글에는 이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를 엄격주의자이자 권위주의자로 치부하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폄하가 반복되고 있으며, 저자는 교황 프란치스코 재위 후반기의 바티칸이 지녔던 열병 같은 분위기에 대해서도 거의 무지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의 결론에는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즉, 교황 레오의 “사명”이란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품위 있고 겸손한 미국인, 드라마 없는 교황, 그 평범함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교황”일 수 있다는 주장 말이다.

    다만, 두 가지 수정은 덧붙여야겠다.

    첫째, 교황 레오는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로지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날 밤부터, 자신의 “메시지”는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해왔다. 엘리가 교황 즉위 이전 레오의 이력을 서술하며 흥미로운 정보들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운동과 인물들에 대한 유감스러운 왜곡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흐릿하게 넘겨버린다. 교황은 하느님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며, 자신이 사랑하고 섬기는 주님을 세상이 알기를 바라는 복음 선포자라는 사실이다.

    둘째, 2025년 교황 공석기 동안 로마에 있었던 우리에게는,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주로 “미국인”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했다. 만일 그가 그렇게 여겨졌다면, 그의 선출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추기경 선거인들은 페루에서의 오랜 사목 경력을 고려해 그를 자기 사람으로 여겼고, 다른 이들은 그를 폭넓은 국제적 경험을 지닌 보편 교회의 저명한 인물로 보았다. 그가 시카고 남부 교외 출신의 화이트삭스 팬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각종 필객들과 방송 해설자들(그리고 물론 일부 성직자들까지)은 교황 레오가 선출된 날부터 그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포장해 왔다. 그 방향은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에서, 해석자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이제 그만할 때다. 교황 성하는 매우 험난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그를 특정 진영이나 의제에 포획하려는 시도는 교황 자신에게도, 교회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1-22 08:18]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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