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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새세대 콘서트 2026’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금강산가극단의 신춘공연은, 문화행사를 가장한 총련식 정치 선전의 전형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무대 위의 젊음은 자발적 예술이 아니라, 이미 짜인 ‘새 투쟁기’ 구호를 되풀이하는 도구에 가까웠다.
지난 23일 도쿄에서 열린 금강산가극단의 공연은 겉으로는 ‘청년들에 의한, 청년들을 위한 콘서트’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총련·조청·류학동 등 산하 조직이 총출동한 조직 결속용 정치 행사였다.
관람객 400명 역시 대부분 동일 조직 내부 인사들로 채워졌고, 외부 사회와의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나 예술적 확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연 전반을 관통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새 투쟁기’, ‘선두에 설 결심’, ‘애족애국’, ‘청년행진’ 등 북한식 정치 수사와 조직 동원 언어가 연목 사이사이에 반복적으로 삽입됐다.
공연의 마지막을 〈조선청년행진곡〉으로 장식한 장면은 이 행사가 문화공연이라기보다 사상 결의대회에 가까웠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설화자로 등장한 단원들의 발언 역시 예술적 성찰이나 세대 담론이 아니라, 선대 계승·집단 결의·조직 결속을 강조하는 정치적 호소문에 가까웠다. 무대는 질문의 공간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감정을 몰아가는 통로였다.
공연에 출연한 조청 단원들은 “앞장서겠다”, “최전선에 서겠다”, “지지자를 늘리겠다”는 표현을 반복했지만, 그 앞에 놓인 현실적 질문인 ‘왜, 무엇을 위해, 누구의 미래를 위해?’에 대한 답은 제시되지 않았다.
청년의 에너지와 감성을 조직의 명분에 덧씌워 소비하는 방식은 오히려 청년을 주체가 아닌 상징물로 취급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비판적 사고, 개인의 선택, 다양한 정체성은 이 무대에서 설 자리를 얻지 못했다.
관람객 인터뷰 역시 전형적이다. “힘과 용기를 얻었다”, “밝은 미래가 보였다”,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말들은 서로를 확인하는 내부용 언어일 뿐, 일본 사회 속 재일동포 청년이 마주한 현실인 정체성 혼란, 진로 문제 등에 대한 실질적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
전직 단원의 “후대가 잘 준비돼 있다”는 평가 역시 예술적 다양성이나 자유로운 창작 역량보다는, 조직 논리를 얼마나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으로 읽힌다.
문화는 본래 체제를 강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만들며 사회를 확장하는 힘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문화의 이름으로 정치적 충성심과 집단 동조를 재생산하는 데 머물렀다.
청년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앞장서라’는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자유, 그리고 조직 바깥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열린 무대다.
예술이 계속해서 투쟁의 장식물로만 소비된다면, 그 끝에 남는 것은 활짝 핀 미래가 아니라 닫힌 박수 소리뿐일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