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52] 미네소타에서 불길을 부채질하다
  • 피터 J. 레이타트 Peter J. Leithart is president of the Theopolis Institute, Birmingham, Alabama. He posts regularly at his Substack, Notes from Beth-Elim. 테오폴리스 연구소 소장

  • 경찰의 물리력 사용 사건을 변호하는 한 변호사 친구는, 영상 증거가 아무리 결정적으로 보이더라도 르네 굿(Renee Good) 총격 사건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내게 경고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과 목격자들에 대한 면담이 이뤄져야 하고, 가능한 모든 증거가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이른바 “상황의 전체성”을 평가하며, 집행 요원이 중대한 부상이나 사망에 대한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인식을 가졌다면 그는 무죄로 판단된다.

    토요일에 알렉스 프레티를 사살한 경찰관 역시, 프레티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인식했다면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법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경찰관들을 보호하며, 그것은 정당하다. 법은 범죄자가 아니라 경찰의 편에 서 있다.

    한편, 미니애폴리스의 반(反) 이민세관단속국(ICE) 시위대는 상황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팀 월즈 주지사와 주 정부 관계자들 또한 그들을 사실상 부추기고 있다. 시위대는 대체로 합법적인 임무를 수행 중인 ICE 요원들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일주일 전에는 ICE와 간접적으로만 연관된 한 교회의 예배가 시위로 인해 방해받기도 했다.

    토요일의 사태는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우발적으로 보인다. 영상에서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프레티는 ICE 요원에게 밀쳐져 넘어진 한 여성을 보호하려다 붙잡혔고, 넘어지고, 폭행당한 뒤 결국 총에 맞았다. 그를 보호로 이끈 본능은 매우 인간적이며, 심지어 고귀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리석은 판단이기도 했다.

    신중한 행정부라면 굿과 프레티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면서도 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추방 정책을 다수의 미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려 했을 것이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내를 호소하고, 물결을 가라앉히며, 불길을 끄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 행정부는 신중하지 않다. 토요일 사건 발생 몇 시간 만에,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의 X 게시물에 응답하며 스티븐 밀러는 프레티를 “국내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연방 법 집행 기관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국토안보부 장관 크리스티 노엠은 프레티가 “폭력을 자행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노엠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한 개인이 9mm 반자동 권총을 소지한 채 미 국경순찰대 요원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요원들은 이 개인을 무장 해제하려 했으나, 무장한 용의자는 격렬하게 반응했습니다. … 이는 누군가가 최대한의 피해를 가하고 법 집행 요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레고리 보비노는 프레티가 “최대의 피해를 입히고 법 집행 요원들을 학살하려 했다”고 말했다. 보수 매체의 선전꾼들은 즉각 행정부의 서사를 받아쓰며, 좌익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더욱 강력한 탄압을 요구했다.

    그러나 완곡하게 말해도, 이것은 모든 이가 목격한 장면과는 다르다. 프레티는 여성이 쓰러지는 것을 보기 전까지 거리에서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처음 요원들에게 제지당했을 때, 그는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손은 항복의 표시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가 총에 손을 뻗었다는 증거는 없으며, 다른 요원이 그를 사살하기 전에 이미 한 경찰관이 그의 총기를 압수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 인사들은 민주당이 “불길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그 말은 맞다. 그러나 거울을 한 번만 들여다본다면 반대편에서도 불길을 키우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위선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들은 선동적 수사를 경고하면서 동시에 선동적 수사를 강화한다. 그들의 거짓말은 오웰적 수준이다.

    내 친구의 경고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이렇게 빨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검토 절차가 스스로 마무리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행정부가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소셜미디어를 탓해 보라. 그것은 우리를 광기로 몰아넣는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왜 우리의 통치자들은 그렇게도 빨리 “게시(post)” 버튼을 누르는가?

    48시간이 지난 지금, 다소 차분한 기류가 형성되는 듯하다. 보비노는 이전 발언을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절차가 진행되도록 기다리자고 촉구하고 있다. 솔직하면서도 공정해 보이는 톰 호먼이 미네소타 작전을 맡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주, 지방 당국 간의 협력을 촉구하며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멤피스처럼 이러한 협력이 이뤄진 곳에서는 ICE가 큰 사건 없이 임무를 수행해 왔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정치적 지형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연민은 사라졌고, 일부 보수 진영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잘 됐다!”는 냉소가 터져 나온다. 보수 매체는 기묘한 기적을 이루어냈다. 주류 언론이 신뢰를 잃고 사기가 꺾인 바로 그 순간, 보수 논객들은 행정부의 거짓과 왜곡을 증폭시키며 스스로를 자멸시켰다. 수년간 주류 언론을 “국가 언론”이라 비난해 오던 그들이, 이제는 스스로 국가 언론이 되어 버렸다.

    장 보드리야르는 후기근대 사회를 “초현실”이라 묘사한 바 있다. 기호는 현실과 자리를 바꾸었다. 현실이 더 이상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재현할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현이 먼저이며, 그것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을 규정한다.

    복제물, 이미지, 서사, 한 줄짜리 트윗이 현실 그 자체보다 더 현실적이 된다. 전쟁조차 카리브해에서 배가 폭발하는 비디오게임 그래픽과 함께, 초현실적 미디어 사건이 되었다. 보르헤스를 인용하며,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영토는 더 이상 지도를 선행하지 않으며, 그 뒤에 존속하지도 않는다. … 영토를 낳는 것은 지도이다.”

    마찬가지로, 칼 슈미트는 친구-적 구분이 정치의 본질이며, 모든 정치적 행위와 동기를 환원할 수 있는 기본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적이란 “타자, 이방인”이며, 그와 어떤 다른 관계를 맺고 있든 간에, 언제나 “물리적 살해의 실제 가능성”이 존재하는 존재다. 정치는 언제나 다른 수단에 의한 생사를 건 전쟁이다. 이 사고방식이 정치 전반에 걸쳐 자리 잡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불안하다.

    우리는 더 이상 법이나 신중한 국정 운영자들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다. 우리는 트윗에 의한 통치, 볼거리와 당파적 서사의 정치 속에 살고 있다. 양당의 공직자들은 지지층을 흥분시키고 적을 자극하는 즉흥적 발언을 게시할 수단과 유인을 모두 갖고 있다.

    보드리야르와 슈미트에게 아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트럼프 행정부일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부채질한 이 불길에서 우리를 건져내려면,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1-28 06:1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 다른기사보기 리베르타임즈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