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55] 블레이디의 구원 랩
  • Joseph Krug Joseph Krug is a teacher and writer from New York. 뉴욕 출신 교사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필리프 폰 하르덴베르크, 필명 노발리스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신의 유산을 굳건히 남길 만큼 다작했다.

    생전에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을 뿐 아니라, 1801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그의 철학과 시에 속한 방대한 유고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산문시 『밤의 찬가』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언어로 말한다. 곧, 비탄 속에서도 지속되는 신앙, 죽음에도 굴하지 않는 희망, 위기 속에서도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다.

    스웨덴 출신 예술가 벤야민 라이히발트는, 예명 ‘블레이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노발리스의 계승자로 보기에는 다소 의외의 인물이다. 그는 친구이자 동료 래퍼인 요나탄 레안도에르와 함께 사운드클라우드의 언더그라운드 랩 공동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전자 댄스 음악에 랩과 실험적 프로덕션을 결합한 장르인 ‘하이퍼 팝’의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명성을 얻었다.

    이 음악은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사운드는 거칠 수 있고, 가사는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블레이디는 이 장르를 자신만의 방향으로 이끌어, 동시대의 다른 음악가들과는 구별되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그 음악 안에 불어넣었다.

    지난해 월드 투어에서 그는 “오직 하느님만이 완전하시다”, “성 게오르기오 순교자”와 같은 제목의 노래들을 공연하며 경기장을 매진시켰다. 라이히발트를 노발리스와 비교하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블레이디는 서구 정전(正典)의 독자들에게 그 전통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도록 도전한다.

    라이히발트의 초기 작품들은 저예산 사운드클라우드 랩 특유의, 청소년적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사랑과 배신, 약물, 파티, 자기혐오 같은 주제들이 그것이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그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앨범 『Eversince (그 이후로)』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드릴 비트와 이모(emo) 보컬 위에 유치할 정도의 우울을 엮어낸다.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발표된 그의 앨범들에서 라이히발트는 다양한 상징과 양식을 실험하면서도, 가사에는 일정한 신비성을 유지했다.

    2019년 태국에서 벼락을 맞는 사고를 겪은 이후, 라이히발트의 시각은 전환을 맞이했다. 2020년 앨범 『333』을 기점으로 그의 노래들에는 종교적 이미지와 주제가 더욱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The Fool』(2021)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영적 지향이 중심 무대로 올라온다.

    이 앨범의 주요 주제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과의 관계로 들어감, 회개, 세속적 사랑 위에 신적 사랑을 두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평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도입곡은 “너의 죄를 고백하라”라는 말과 성 게오르기오에게 바치는 기도로 시작된다.

    이 앨범은 세상의 방식에는 무지하지만 신적 신비에는 열려 있는 ‘거룩한 어리석은 이’의 관점에서 읽힌다. “나는 밤에 대해 그들에게 말하려 했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어 / 공기 속에 아름다움과 마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지만”이라고 블레이디는 〈egobaby〉에서 랩한다.

    현대의 독자들에게 ‘어리석은 이’의 이미지는 광대 같은 것을 연상시킬 수도 있지만, 라이히발트가 하고 있는 일은 그와 다르다. 이 앨범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Parsifal』과 많은 공통점을 지니는데, 이름에서부터 그렇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이 아랍어에서 유래했으며 “순수한 어리석은 이”를 뜻한다고 믿었다. 라이히발트 역시 바그너처럼, 비관에 빠지지 않는 포기(자기부정)만이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유를 변주한다.

    블레이디의 가장 최근 정규 앨범 『Cold Visions』는 양식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Eversince』와 유사하다. 그는 수년 만에 다시 욕설을 사용하고, 약물에 대해서도 다시 랩한다. 프로덕션은 고딕적이고 음울하며, 때로는 교회적 분위기마저 띤다.

    이는 단순히 초기 스타일로의 회귀가 아니라, 라이히발트가 중독과의 투쟁을 자신의 신비주의적 세계관과 대화 속에 끌어들이는 시도다. 〈Don’t do Drugz (마약 하지마)〉에서 그는 회복을 갈망하는 중독자의 상태를 이렇게 노래한다.

    “눈을 뜨자마자 증오를 느끼고
    매일 매일이 망가져 버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해버리는 게 낫겠지.”

    과연 희망은 있는가? 라이히발트에게 답은 분명하다. “너에게는 더 높은 목적이 있어야 해 / 다시 자신을 용서해야 해.” 회복은 영적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요구한다. 삶의 고점과 저점 모두가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의식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는 오직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매체가 그의 메시지를 제한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라이히발트는 정통적 의미의 그리스도교 신자도 아니다. 그는 『Pitchfork』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신비주의와 연금술에 관한 여러 책을 읽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시도를 무효로 만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힌두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T. S. 엘리엇은 어디에 있었을까?

    신비주의와 오컬트에 대한 매혹이 없었다면 W. B. 예이츠는 어디에 있었을까? (아마도 천국에 있었을 것이다.) 라이히발트가 직면한 도전은, 하이퍼 팝이라는 장르 자체가 본질적으로 저급문화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은 보수적 관객에게 블레이디의 음악은 지속될 가치가 있는 무엇이라기보다는, 현대 랩의 퇴폐성과 더 많은 공통점을 지닌 것으로 들릴 것이다.

    블레이디는 문화에 말을 거는 가장 좋은 방식이, 그 문화의 모국어로 말하는 것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단테도 그렇게 생각했고, 초서와 셰익스피어 역시 그랬다. 노발리스 또한 고급과 저급을 결합했다. 그의 『밤의 찬가』는 숭고한 형이상학과 사랑의 탄식이 지닌 직접적이고 친근한 어조를 함께 묶어낸다.

    그의 기획의 핵심에는 시와 민속을 통해 세계를 다시 매혹시키는 것이 있었다. 블레이디 역시 노발리스처럼, 신화 만들기를 해독제로 제시한다. 차갑게 식어버린 세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은, 시를 통해 신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노발리스는 『밤의 찬가』 제5부에서 세계적 구속에 대해 이렇게 썼다.

    사랑은 거저 주어지고
    분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온 생명은
    끝없는 바다처럼 출렁인다.
    단 한 밤의 황홀,
    하나의 영원한 시
    우리가 함께 나누는 태양은
    하느님의 얼굴이다.

    『Cold Visions』의 끝에서 라이히발트는 이와 같은 정서를 초대의 말로 바꾼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매혹됨을 향한 길잡이로 간직해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바라자
    섣부른 단정을 건너뛰고
    생각하자, 노래하자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이 나의 사랑이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1-31 08:2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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