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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매체가 연일 선전하는 ‘청년 탄원 진출’은 겉으로는 애국과 헌신의 서사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수사 뒤에는 선택권을 박탈당한 청년 세대의 강제 동원, 그리고 국가 실패를 개인의 ‘충성’으로 메우려는 구조적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평양의 90여 명 청년들이 강동종합온실농장으로 ‘탄원’해 떠났다는 보도는, 최근 수년간 반복돼 온 익숙한 장면이다. 당국은 이를 “애국을 삶의 지향으로 삼은 청년들의 자발적 선택”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북한 사회에서 ‘탄원’이란, 자유로운 지원이 아니라 사실상 압박과 강요가 결합된 동원 메커니즘에 가깝다.
선전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탄원자 숫자를 성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오히려 청년 실업과 배급 붕괴, 사적 경제의 통제 강화로 인해 다른 생존 경로가 봉쇄된 현실을 반증한다.
탄광·광산·농장·외진 학교로의 배치는 개인의 적성과 희망을 고려한 배려가 아니라, 위험하고 기피되는 노동을 떠넘기기 위한 국가의 계산이다.
평양의 ‘새 거리’, 대규모 온실농장, 수해 복구 성과는 늘 청년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그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안정적 임금도, 주거 보장도 아니다. 과로와 안전사고, 영양 결핍, 장기 분리 배치가 일상화된 현장에서 청년들은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소모당한다.
현장을 찾은 김정은의 찬사는 정권의 만족을 드러낼 뿐, 청년 개인의 권리와 삶의 질에 대한 성찰은 없다. “이 세상에 우리 조선청년 같은 세대는 없다”는 말은, 청년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청년을 동력으로 소모하는 현실을 가리는 장식적 언어다.
당국은 이를 ‘사회주의의 계승’이라 부른다. 그러나 자유로운 이동과 직업 선택, 안전한 노동 환경이 결여된 체제에서 청년 동원은 계승이 아니라 인적 자원의 고갈이다. 애국을 강요하고 헌신을 미화할수록, 청년 세대의 신뢰와 미래는 빠르게 소진된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탄원진출’은 자발적 애국의 증거가 아니라 체제 실패의 징후다. 국가는 청년을 칭송하기에 앞서, 선택권과 안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찬사는 공허한 선전일 뿐이며, 그 대가는 언제나 청년들이 치르게 된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