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나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있는 국가안보국 건물의 어둑한 면담실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바그라트 갈스타냔 대주교는 나와 동료들—가톨릭 사제 한 명, 스위스 국회의원 한 명, 그리고 국제기독연대의 회장—위에 강복 기도를 바쳤다.
그 뒤, 친절한 교도관들이 대주교를 다시 그의 감방으로 데려가기 위해 들어왔다.
아르메니아는 내가 대주교를 감옥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라다. 그러나 대주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직자들에게 있어 자신은 결코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그의 교회적 동명이인인 바그라트 바르다자리안 대주교는 바로 이 동일한 건물에서 소련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고, 지하실에서 처형되었다.
우리는 감옥을 떠나며, 대주교가 전날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함께 가져왔다. 그 서한에서 대주교는 교회가 “1,700년 동안 해왔던 바로 그것, 곧 세계 최초의 그리스도교 국가인 아르메니아 민족을 보존하는 일”을 단지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부통령에게 밝혔다.
바그라트 대주교는 6월 25일 체포되었다. 그는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이는 나중에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음성 녹취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세 명의 다른 주교들도 체포되었다. 미카엘 아자파햔 대주교는 이전에 아르메니아 검찰이 근거 없다고 기각했던 혐의로 2년형을 복역 중이다.
므크르티치 프로슈얀 주교는 “정치 활동 강요” 혐의로 미결 구금 상태에 있다. 아르샤크 하차트랸 대주교는 2018년 한 시위자의 소지품에 마리화나 한 개비를 심었다는 혐의로 구금되어 있다. 문제의 마리화나는 지난 수년간 증거 보관함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주장되지만,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이러한 혐의들의 터무니없음은, 그것들이 핵심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탈린의 처형 집행인이었던 베리야의 말처럼, “사람만 데려오면, 죄목은 내가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 총리 니콜 파시냔은 진정한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수장인 ‘전(全)아르메니아 가톨리코스’에게 공개적으로 사임을 요구하며, 국가가 임명한 위원회가 선택한 인물로 교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종교 자유와 교회법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마치 조르자 멜로니가 교황 레오 14세의 사임을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다.
파시냔은 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옛 소련식 각본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의 정부는 교회의 최대 후원자인 사무엘 카라페티안을 투옥하고, 그의 사업체들을 국유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1920년대 볼셰비키가 이른바 ‘자유 교회’ 성직자들을 이용해 분열을 조장했던 것처럼,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이탈 주교 집단을 조직했다.
이 새로운 박해의 물결에는 배경이 있다. 2020년, 아르메니아는 강력한 동맹국 터키의 지원을 받은 이웃 국가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아제르바이잔은 수천 년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이 살아온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차흐)를 공격했다. 그곳에 살던 12만 명의 아르메니아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강제로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그 이후 유럽연합과 미국은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의 조건에 따른 평화와, 아제르바이잔 및 터키와의 “경제적 통합”으로 나아가도록 압박해 왔다.
서방의 지역 전략은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잇는 경제 회랑을 구축하여, 유럽이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가스, 그리고 중국산 상품을 공급받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아르메니아를,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과 아르차흐의 민족 정화를 자행한 세력들에 영구적으로 취약하고 경제적으로 종속된 상태로 만들 위험이 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파시냔은 이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그는 “현실의 아르메니아(Real Armenia)”라 부르는 새로운 이념에 기초해 아르메니아 공화국을 재건하려 한다.
아르메니아는 집단학살 이후 아르메니아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헌신하는 국가로 건국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아르메니아’는 서방을 향한 국가로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파시냔에게 있어 집단학살의 기억, 카라바흐와 아나톨리아의 상실된 고향들, 심지어 전 세계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조차도 ‘현실의 아르메니아’를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총리의 이러한 구상에 공개적으로 도전해 왔다. 2024년 5월, 아르메니아 정부는 바그라트 대주교가 교구장으로 있는 타부시 주의 일부 영토를 일방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양도했다. 이에 대주교는 타부시에서 예레반까지의 항의 행진을 조직했다. 이 행진은 곧 정치 운동으로 성장했고, 대주교를 총리 후보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가톨리코스는 그에게 교회 직무에서의 휴직을 허가했다.)
그러나 체포는 그로부터 1년 뒤에야 시작되었다. 가톨리코스가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회의에서 연설하며, 아르차흐 출신 아르메니아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후였다. 며칠 뒤 총리는 가톨리코스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몇 주 후 바그라트 대주교가 체포되었다.
서구인들에게는 대주교가 총리에 출마하거나, 교회가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생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접촉한—수감 중이거나 그렇지 않은—아르메니아 성직자들에게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다. “교회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주교는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서한에서 바그라트 대주교는 밴스 부통령이 “유럽연합이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포기함으로써 문명적 자살을 저지르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것이 아르메니아 총리가 아르메니아에서 설계하고 있는 일”이라고 쓴다.
누군가는 대주교의 평가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서방의 그리스도인들—특히 우리 자신의 나라에서 그리스도교가 정치와 사회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미국의 동맹국인 세속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를 파괴하려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방문을 마치며 우리는 바그라트 대주교에게, 다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그를 감옥에서 방문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오십시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