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거의 정확히 4년 전 워싱턴 포스트에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트럼프 임기에서는,” “그가 나토(NATO)에서 탈퇴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평론가 집단과 그들의 논객들은 이 발언을 두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훗날 MSNBC의 주요 인사가 된 젠 사키는 이를 두고 “미국 국민이 그 대통령이 더 이상 재임하지 않는 데 감사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반응은 도널드 J. 트럼프가 세계 최강의 군사 동맹을 실제로 포기하고, 그에 따라 유럽 대륙을 방기하려 한다는 서사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두 번째 트럼프 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미국은 그 예언을 실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수 세대 만에 가장 중대한 유럽 방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2월 14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행한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결정적 연설은 미국의 헌신의 핵심을 꿰뚫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수 세기에 걸친 공유된 역사, 그리스도교 신앙, 문화, 유산, 언어, 혈통, 그리고 공동 문명을 위하여 함께 치른 선조들의 희생을 통하여 형성된 하나의 문명에 속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연설은 1940년 6월, 포위된 영국 국민에게 “(이) 전투에 기독교 문명의 생존이 달려 있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미국을 포함하여 우리가 알고 아껴온 모든 것이 새로운 암흑시대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처칠의 음성을 상기시킨다.
유럽, 미국, 그리고 서방이 하나의 문명적 운명을 공유한다는 사상은 이제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미국 정책의 초석이 되었다. 그 전조는 충분히 있었다. 특히 2025년 11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은 “유럽은 전략적·문화적으로 미국에 여전히 중대하다”고 선언했다.
이어 불과 며칠 전 발표된 국무부 기관 전략계획은 미국이 “공유된 전통, 문화적 유산, 정치적 가치, 가족적 유대로 유럽과 결속되어 있다”고 분명히 밝히며, 대륙과의 “문명적 동맹”을 증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제 국무장관 자신이 뮌헨에서 유럽 지도자들 앞에서 이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의 유대—그리고 그에 따른 미국의 유럽에 대한 이해관계—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미국에 중요한 것은 나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속한 국가들이다. 그러나 그 국가들은 반드시 그들의 국가(state)와 일치하지 않는다. 여러 경우에서 그 국가들은 NSS와 루비오가 모두 “문명적 소거”라고 부르는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거는 여러 형태를 띠지만, 크게 두 가지 현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유럽의 종교와 고유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로서, 유럽에서 독특하게 형성된 “질서 있는 자유”의 유산이 약화되는 현상이다. 유럽인들이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소셜미디어 게시물로 인해 투옥되며, 권리의 추가적 축소가 실제적 논의 대상이 되는 상황—예컨대 현 영국 정부가 배심 재판과 지방 선거를 폐지하려는 시도—은 이러한 소거가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둘째 현상은, 비유럽인들의 대규모 유입과 정착을 통하여 유럽의 특정 지역에서 유럽적 정체성이 희석되거나 심지어 종식될 정도에 이르는 현상이다. 영국 도시들에서 하마스를 지지하며 행진하는 이슬람주의자들, 프랑스에서 참수된 교사들, 그리고 이제 일상화된 차량 돌진 테러로부터 성탄절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독일의 볼라드(차단기둥)들은 그 결과를 증언한다.
이제 이러한 소거는 미국에 의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정책화되었다. 이는 감정적 이유에서도 그러하지만, 더욱 강력하게는 국가적 이익의 관점에서 그러하다.
뮌헨에서 루비오가 제기한 비판과 행정부의 유럽 관련 메시지 전반에는 처칠을 닮은 인식이 깔려 있다. 곧, 우리가 하나의 위대한 문화에 참여하는 이들로서 함께 흥하거나 함께 쇠한다는 이해이다.
유럽의 잘못된 정책은 미국의 잘못된 정책이 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세속화와 종교적 신앙 실천의 붕괴—그로 인한 출산율 급락과 인간 생명의 가치 절하를 포함한 결과들—는 미국의 경험을 예고한다. 그리고 루비오가 지적했듯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유럽은 그 본성상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뮌헨 연설에서 주장했듯이(그리고 다른 유럽 지도자들도 이를 반복했듯이), 이는 미국이 각 국가와 사회의 내정에 개입하고 가치 판단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미국의 기획을 오해한다.
루비오가 표현한 것은 1648년 이후 지속되어온 베스트팔렌 체제의 유보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19세기적 국가(state)와 민족(nation)을 혼동했던 관행을 되돌리고 있으며, 17세기에 국가를 민족보다 우선시했던 관행을 약화시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필리아(philia, 우정·연대)와 텔로스(telos, 목적)를 함께 지닌 공동체로 정의한 ‘민족’이야말로 국가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그리고 유럽적 맥락에서 국가가 그 민족에 반하여 작동할 때, 그 민족들의 상속자이자 산물인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행동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이념적 선호의 표현이 아니라, 거의 모든 근접 관찰자들이 놓쳐버린,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전략적 재질서화이다.
그 결과는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 드러날 것이다. 종종 다른 나라를 ‘미국화’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미국은 이제 유럽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수행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곧, 유럽을 유럽으로서 수호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처칠의 말처럼, “모든 힘과 능력을 지닌 신세계가, 옛 세계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나아간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