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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일본 고베에서 열린 조선학교의 창립 80주년 기념공연이 성대하게 진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행사 제목은 《모아》. “힘 모아, 지혜 모아, 사랑 모아 찬란한 미래로”라는 구호 아래 약 500명이 참석해 축하 공연을 펼쳤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역 공동체의 교육 80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행사를 둘러싼 정치적·이념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학교 축하 공연으로만 보기 어려운 지점이 적지 않다.
■ ‘민족교육’의 이름 아래 가려진 정치적 배경
고베초중은 일본 내 조선학교 체계에 속한 학교로, 이들 학교는 오랜 기간 일본 사회 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조선학교를 지원·운영하는 단체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라는 점은, 북한 정권과의 관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이번 행사에도 총련 효고현본부 위원장이 참석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단순한 교육 기념행사라면 지역 교육계 인사나 학부모 중심의 행사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련 간부가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이 학교가 단순한 민족 정체성 교육 기관을 넘어 정치적·이념적 성격을 지닌 공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민족교육’이라는 표현은 감성적으로는 보호받아야 할 문화적 권리처럼 들리지만, 그 내용이 특정 체제와 지도자를 미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된다면 이는 교육이 아니라 이념 주입에 가깝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 80년의 역사, 무엇을 성찰했는가
8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사이 한반도는 분단을 겪었고, 북한은 핵무장을 강행했으며, 일본 사회와의 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왔다. 그렇다면 이번 80주년 공연은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성찰의 자리였는가?
보도에 따르면 공연은 “찬란한 미래를 향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되었다. 그러나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조선학교가 일본 사회와 어떤 갈등을 겪어왔는지, 왜 일본 정부가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했는지, 북한 정권의 인권 문제나 납치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80년을 기념하는 자리라면, 단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무대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공론의 장이 되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어린 학생들의 무대, 누구를 위한 메시지인가
이번 공연은 원아와 학생들, 교직원, 학부모, 졸업생들이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무대에 서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무대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에 있다.
어린 학생들이 ‘민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정치적 상징과 구호를 자연스럽게 체화하도록 만드는 구조라면, 이는 교육의 자율성과 비판적 사고를 저해할 수 있다.
교육은 아이들이 다양한 가치관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나의 이념적 서사만을 강조하는 공간은 교육이 아니라 훈육에 가깝다.
■ 일본 사회와의 관계, 계속된 긴장
조선학교는 일본 사회에서 오랜 기간 재정 지원과 차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납치 문제 등을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반면 학교 측은 이를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적 현실을 무시한 채 “민족교육 보호”만을 외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교육기관이라면 정치적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 정권과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 없이는 일본 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 진정한 미래는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는 것’
“힘 모아, 지혜 모아, 사랑 모아.” 구호 자체는 아름답다. 그러나 진정한 미래는 내부 결속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다양한 가치와 비판을 수용하고, 폐쇄적 구조를 넘어 외부와 소통할 때 비로소 열린 미래가 가능하다.
고베초중 80주년 공연이 단순한 기념행사에 그치지 않고, 조선학교의 역할과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찬란한 미래’라는 말은 또 하나의 선전적 수사로 남을 뿐이다.
교육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특정 체제나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다. 80년의 무게를 진정으로 기념하려면, 이제는 질문에 답할 차례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