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탱 드랑크(Quentin Deranque)는 스물세 살의 청년으로, 프랑스 리옹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최근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통상 전통적 라틴 전례에 따라 미사가 거행되는 리옹 교구 소속 생조르주 성당에 출석하였다.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은 캉탱을 경건하고 학구적인 청년으로 묘사했다. 그의 일상은 신앙생활과 독서, 그리고 학업 성취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라디오 쿠르투아지에서 증언한 친구 “뱅상”은 그의 “도덕적·영적 덕행”을 칭송하며,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노에 깊은 관심을 가진, 고전적 그리스도교 신학에 정통한 ‘책벌레’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 “바티스트”는 《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깊이 신심이 있고, 지적이며, 정의감이 강한 인물로 묘사했다.
2026년 2월 12일, 캉탱은 두 명의 남성과 함께 ‘콜렉티프 네메시스’ 소속 여성 활동가들을 동행하여 리옹 정치대학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콜렉티프 네메시스는 대규모 이민, 이슬람주의, 그리고 좌파 이데올로기가 프랑스와 유럽의 젊은 여성들의 삶과 권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반대하는,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우파 성향의 비정부기구(NGO)이다.
이들은 극좌 정당 ‘라 프랑스 앵수미즈(LFI)’ 소속 유럽의회 의원 리마 하산의 교내 강연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펼치기 위해 현장에 나왔다. 팔레스타인계라고 주장하는 하산은 10월 7일 사태 이후 하마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잘 알려져 있다.
상식적인 정치적 퍼포먼스가 이어졌어야 했다. 극좌 인사가 극좌 성향 대학에서 발언하고, 우파 활동가들이 평화적으로 외부에서 항의하는—그런 장면 말이다. 그러나 대신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휴대전화 영상, 공식 부검 보고서, 그리고 리옹 사법재판소 수석검사 티에리 드랑의 예비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초기에 일부 언론은 이를 극우와 극좌 활동가 간의 “거리 난투극”으로 묘사하며 공동 책임을 암시했으나, 이제는 부인할 수 없다.
복면과 후드를 쓴 약 20명의 남성이 캉탱과 두 명의 동행자를 에워싸고 땅에 쓰러뜨린 뒤 집단 구타하였다. 캉탱은 동료들과 떨어져 고립되었고, 여섯 명이 그를 보도 위로 내던진 뒤 반복적으로 폭행하고 흩어졌다.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캉탱이 이미 무력화된 이후에도 그의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했다. 영상 분석에서는 최소 열한 차례의 개별적인 타격이 확인되었다. 한 남성은 캉탱 위에 올라타 반복적으로 주먹을 휘둘렀고, 또 다른 이는 금속 물체로 보이는 것으로 그를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
부검 결과, 캉탱의 두개골과 뇌에는 “중대한 두개뇌 외상”과 “우측 측두골 골절”을 포함한 심각하고 광범위한 손상이 있었으며, 이는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몇 분 뒤 캉탱이 의식을 회복했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묘사되었으며, 처음에는 의료적 처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좌파 진영의 선전 기계는 이 점을 물고 늘어지며, 그가 치명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초기 치료 거부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검 보고서는, 그가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더라도 결국 부상으로 사망했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사실을 정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수의 휴대전화 영상, 공식 부검 보고서, 그리고 리옹 수석검사의 공식 보고가 이를 입증한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는 없다. 캉탱은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에게 공격당해 살해되었다. 그는 폭력을 추구하거나 도발하거나 시작하지 않았으며, 가해자들은 의도적으로 그를 구타한 뒤 죽도록 방치하였다.
이 사건의 의미는 분명하다. 프랑스 중도우파 평론가 케빈 보쉬에는 어제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의 찰리 커크다.”
캉탱은 찰리 커크만큼의 공적 인지도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덕망 있고 재능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단지 평화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극좌 극단주의자들에게 이유 없이 살해되었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거리 수준의 정치적 폭력 전통으로 악명 높다. 폭력으로 번지는 시위, 혹은 이민자나 이슬람주의자에 의한 폭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공산주의 테러 단체 ‘아크시옹 디렉트’가 르노 CEO 조르주 베세를 살해한 일련의 테러 이후, 극좌·극우 조직 폭력 단체들은 프랑스 경찰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태 이후 좌파가 사용한 전술과 유사한 공포 조성 전략을 구사하는 새로운 조직적 안티파(Antifa) 집단이 프랑스에서 부상하고 있다.
사건 초기, 파리의 우파 인사들은 익숙한 패턴이 반복될 것이라 예상했다. 사건은 축소되고, 사실은 흐려지며, 극좌 성향 판사들이 가벼운 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처음에는 그런 조짐이 보였다. 초기 보도는 “거리 난투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치사에 이른 폭행(고의 없음)”이라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48시간 동안 단 한 건의 체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찰은 종종 체포 직전까지 기다린다. 체포가 이루어지는 즉시 변호인단이 증거 목록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증거가 확고해질 때까지 신중히 준비한다는 것이다.
결국 부검 보고서와 영상이 온라인과 주류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초기의 왜곡된 보도는 설 자리를 잃었다. 비록 지연되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X를 통해 모호함 없이 이번 폭행을 규탄하고, 관련자 전원의 체포와 재판을 촉구했다. 프랑스 국회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리옹 검찰은 “고의적 살인” 혐의로 기소했으며, “집단 폭력, 얼굴 은폐, 즉석 흉기 사용”이라는 가중 사유와 함께 “범죄적 결사” 혐의도 적용했다.
경찰은 11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7명은 고의적 살인과 범죄 공모 혐의로 구금되었고, 4명은 범인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되었다. 수사 당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폭력적 좌익 극단주의 집단 전반에 대한 강경 단속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들 폭력적 극좌 집단과 제도권 좌파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핵심 인물은 라파엘 아르노로, 그는 폭력적 단체를 창설한 뒤 LFI 소속으로 의회에 입성했다. 체포된 인물 중 한 명인 자크-엘리 파브로는 체포 당시 아르노의 의회 보좌관이었다. 또 다른 인물 역시 의회 보좌관으로 일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세 번째는 의회 인턴 출신이었다. 이들 모두 LFI와 연관되어 있었다.
현재로서는, 프랑스 정부가 우익 진영이 오래전부터 요구해 온 폭력적 극좌 변두리 세력에 대한 대대적 단속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프랑스 사법 당국은 통상 모든 극단주의 집단을 감시해 왔기 때문에, 단속 의지만 있으면 즉각 조치가 가능하다. 이는 오랜 기간 우익 집단만을 위협으로 간주해 온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상황과는 다르다.
둘째, 10월 7일 이후 LFI가 국제주의 좌파의 외피를 벗고 노골적인 이슬람-아랍 정체성 정치 노선을 채택하면서, 많은 중도 엘리트들이 극우보다 극좌를 더 큰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일부는 국민연합의 경제 정책에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법질서와 이민 통제 문제에 있어서는 입장을 공유한다고 말한다. 반면, LFI의 이슬람주의, 반백인 정체성 정치, 준공산주의적 경제관의 혼합은 공화국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여겨진다.
필자에게 놀라운 점은, 프랑스의 권력 엘리트 안에 여전히 공화주의자로서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캉탱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의 평화적 표현의 권리를 믿는다. 그리고 국가가 폭력으로 그를 침묵시킨 자들을 엄벌하는 것이 시급하다.”
캉탱의 죽음은 참혹한 살인이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그가 속했던 공동체는 아직 정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이유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