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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2026년 2월 22일 북한 매체는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하는 조선의 장애자정책”이라며,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회의에서 채택된 ‘장애자권리보장법’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보도의 핵심 구호는 분명하다. 과거의 ‘보호’에서 ‘권리보장’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호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북한은 해당 법을 통해 “장애자들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비장애자들과 꼭같은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체제에서 ‘동등한 권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의 모든 사회·정치 활동은 조선로동당의 지도 아래 통제된다. 정치적 다원주의가 존재하지 않고, 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구조에서 장애인의 권리 역시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인정된다.
‘권리보장’이라는 표현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인권 개념을 차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시혜적으로 허락하는 ‘관리된 권리’에 가까운 것이 아닌지 되묻게 된다.
북한은 1998년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중앙위원회를 조직했다고 밝히며, 오랜 기간 장애인 보호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독립적 시민단체가 아닌 국가 산하 조직에 가깝다.
장애인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라기보다, 당과 행정기관의 지도를 받는 하부 조직 체계라는 점에서 자율성과 대표성은 제한적이다.
‘보호’에서 ‘권리’로의 전환은 정책 언어의 변화일 뿐, 정책 결정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전환이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최근 몇 년간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받아왔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각종 국제 NGO는 북한 내 장애인의 이동 제한, 교육·의료 접근성 부족, 시설 격리 문제 등을 지적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자권리보장법’ 채택은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국제기구와의 협력 사업, 인도적 지원 확보, 제재 국면 완화 등을 고려할 때, 인권 관련 법률 정비는 외교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법의 구체적 시행 규정, 예산 배정 규모, 지방 단위 집행 현황 등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 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권리 개념이 체제 유지 논리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직업 선택의 자유, 정보 접근권은 단순한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반의 개방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내부 이동의 자유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정보 접근 역시 국가가 선별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란 쉽지 않다.
권리보장은 법률 조항 몇 개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 집행의 투명성, 독립적 감시 기구의 존재, 시민사회의 참여,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 표현·결사의 자유 보장 등 이러한 조건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권리라는 단어가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 “《보호》에서 《권리보장》으로”라는 구호를 내건 것은 분명 정책 언어의 변화다. 그러나 권리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며, 선전이 아니라 구조적 개혁을 통해 구현된다.
장애인의 존엄은 체제 선전의 소재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는지 여부는 법의 존재가 아니라, 그 법이 현실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