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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지정학 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뉴질랜드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동맹의 일원으로서 외국 세력의 개입 문제에 본격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월 21일 오클랜드 와이푸나 호텔 및 컨벤션 센터에서 ‘민주와 자유를 수호하고 외국의 간섭에 맞서다’를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태즈먼 동맹(Tasman Union)이 주최하고, 뉴질랜드 언론 자유 연합과 뉴질랜드 가치 연합이 공동 주관했다.
정계 인사, 안보 전문가, 학자,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외국의 정치·사회적 개입 실태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초한계 전쟁,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든다”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은 특히 중국 공산당의 이른바 ‘초한계 전쟁(超限战)’ 전략을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이 전략은 군사 영역을 넘어 경제, 정보, 문화, 선거, 여론 형성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전 뉴질랜드 국회의원 시몬 오코너, 노동당 소속 헬렌 화이트 의원, 행동당 토드 스티븐슨 의원, 언론자유연합 CEO 질레인 헤더, 필라 NZ 공동창립자 닉 한니, 주뉴질랜드 대만대표 오장안, 캔터베리대 교수 앤 마리 브래디, 언론인 폴 펜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침투의 최종 목표는 기존 자유민주 질서를 약화시키고, 권위주의적 통치 모델에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뉴질랜드, 호주, 대만 등 인도·태평양 지역 민주국가들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민·상공 네트워크 통한 선거 개입 가능성”
베테랑 언론인 천웨이젠은 인터뷰에서 뉴질랜드의 이민 및 화교 사회가 중요한 ‘영향력 행사 지대’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중국계 이민 기관이나 상공회의소가 중국 대사관·영사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네트워크가 지역사회 선거 성향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떤 후보가 ‘우리에게 유리한지’에 대한 정보가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이는 지역사회 투표 방향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천웨이젠은 특히 직접적인 외교 채널이 아닌 ‘간접 경로’를 강조했다. 그는 “일부 뉴질랜드 정부 관료들이 ‘신중한 경제·무역 관계 유지’를 명분으로 언론 보도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자기 검열’ 분위기는 명시적 외교 개입보다 탐지와 대응이 더 어렵고, 민주주의 신뢰성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대응책으로 외교 관례를 벗어난 활동이 확인될 경우, 해당 외교 인력에 대한 공식 경고나 추방 등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헬렌 화이트 “지리적 거리, 더 이상 방패 아니다”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신임 정보·안보 감시 그룹(IPAG) 의장인 헬렌 화이트는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그녀는 “로비스트와 정치인 간 빈번한 신분 전환은 현재 제도상의 취약 지점”이라며, 이해충돌 방지와 투명성 강화를 위한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며, 디지털 시대에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 영향력이 즉각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이트 의원은 특히 호주의 사례를 언급했다. 호주는 상원 차원의 조사와 외국 간섭 대응 입법을 추진해 왔지만, 뉴질랜드는 아직 체계적 대응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녀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심층적 조사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만 모델’ 주목…민간이 허위정보 대응
화이트 의원은 허위정보 대응과 관련해 ‘대만 모델’을 높이 평가했다. 정부 주도의 통제가 아닌, NGO 중심의 사실 검증과 시민 참여 기반 감시 시스템이 더 높은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시민사회가 주도할 때 민주주의적 정당성이 강화된다”며, 뉴질랜드 역시 민간 주도의 허위정보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악의적 정보 조작에 대응하는 ‘균형 모델’로 평가된다.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선 뉴질랜드
이번 심포지엄은 단순한 학술 토론을 넘어, 뉴질랜드가 국제 질서 변화 속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참석자들은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며, 투명성 강화, 외국 간섭 대응 입법, 시민사회 역량 제고, 초당적 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파이브 아이즈 동맹의 일원으로서 뉴질랜드는 정보 공유와 안보 협력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방 사회의 취약성 또한 안고 있다.
이번 오클랜드 심포지엄은 그 취약성을 공개적으로 진단하고, 대응 의지를 모색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주주의의 방어는 더 이상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제도와 시민의 실천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가 행사 전반을 관통했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