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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미·중 전략 경쟁의 또 다른 전선으로 떠오른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파나마 운하 항만 운영권 문제, 베네수엘라 정권 급변, 페루 대통령 탄핵 사태, 에콰도르 수력발전소 배상 판결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중국이 공들여 구축해온 경제·외교 네트워크가 구조적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나마 운하 항만 운영권 박탈…전략 거점 상실
중미 전략 요충지인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5%가 통과하는 글로벌 물류 핵심축이다. 태평양 측 발보아 항구와 대서양 측 크리스토발 항구는 운하 운영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파나마 대법원이 홍콩계 기업이 보유해온 두 항구의 특허 경영권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하면서, 파나마 정부는 직접 행정·운영 통제권을 인수했다. 이는 단순한 상업 계약 분쟁을 넘어, 미·중 전략 경쟁의 상징적 장면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파나마를 상대로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과의 ‘일대일로’ 협정 갱신 중단을 압박해왔다. 중국 측은 해당 자산 매각을 둘러싸고 자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와 국영기업 참여 요구 등 강경 대응에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운하 양단의 전략 항만을 직접 통제하려던 구상은 좌초됐다.
베네수엘라 정권 급변…‘전천후 동반자’ 붕괴
중국이 서반구 교두보로 삼아온 베네수엘라에서 정권 변동이 발생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중국과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던 니콜라스 마두로가 실각하면서, 장기간 누적된 차관·투자 구조도 불확실성에 빠졌다.
차베스 시절부터 이어진 밀착 관계 속에서 중국은 에너지·인프라·무기 분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왔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채무 상환과 계약 지속 여부가 재검토되면서, 중국이 기대했던 저가 원유 공급 및 전략적 영향력 확대는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반미 블록을 형성하는 데 핵심 축이었던 만큼, 이번 변화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지역 전략 구도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페루 대통령 탄핵…정치 스캔들 속 미·중 각축
페루 의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하면서, 현지에서 ‘중국집 게이트’로 불린 스캔들이 정국을 뒤흔들었다. 대통령과 중국계 사업가 간의 비공개 접촉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페루는 최근 20년간 중국과 무역·광물·인프라 협력을 확대해왔으며,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미국이 페루를 전략적 안보 협력 대상으로 격상하고 해군 기지 건설·방산 협력을 추진하면서, 리마는 다시 워싱턴과의 전통적 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이번 탄핵 사태는 단순한 국내 정치 문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미·중 세력 재편의 한 단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에콰도르 수력발전소 배상…‘일대일로’ 신뢰도 타격
에콰도르의 코카코도-싱클레어 수력발전소는 중국의 대표적 ‘일대일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완공 직후 다수의 구조적 균열이 발견되며 국제 중재로 비화했고, 결국 중국 국영기업이 4억 달러 배상에 합의했다.
이 사건은 ‘일대일로’ 사업의 품질·부채·계약 이행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란을 재점화했다. 다른 참여국들 역시 계약 재검토 및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해외 인프라 전략에 장기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구조적 후퇴인가, 전략 조정의 전환점인가
파나마,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에서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정치·안보 변수와 충돌할 경우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라틴아메리카는 오랫동안 미국의 전통적 영향권으로 인식돼왔지만, 2000년대 이후 중국이 대규모 자본과 무역을 앞세워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경제 협력만으로는 지정학을 대체할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미·중 경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역시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기울기보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실용 외교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약화가 일시적 조정에 그칠지, 구조적 후퇴로 이어질지는 향후 각국의 정권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