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63] 세속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 피터 J. 레이하트 Peter J. Leithart is president of the Theopolis Institute, Birmingham, Alabama. He posts regularly at his Substack, Notes from Beth-Elim. 테오폴리스 연구소 소장

  •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일론 머스크가 거대한(물론 비유적인) 전기톱을 휘두르며 연방 관료제의 복도를 활보하던 시절, 우리는 1961년에 설립된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USAID는 소련의 선동에 취약할 수 있는 빈곤 국가들에서 개발 사업, 기술 혁신, 투자 촉진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따라서 USAID는 제3세계를 자유세계로 이끄는 미국의 사명을 수행하는 도구였다.

    머스크는 USAID로부터 진보적 비정부기구(NGO)로 이어지는 자금의 흐름을 폭로했다. 세르비아의 DEI 프로그램에 100만 달러, 과테말라의 성전환 수술 지원에 수백만 달러, 매년 LGBTQ 프로그램에 2,500만 달러, 이른바 “가족 계획”(즉, 낙태)에 수백만 달러, 이라크 텔레비전에 「세서미 스트리트」를 방영하는 데 수백만 달러가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 계란을 던지더라도, 미국 납세자의 자금으로 지원받는 동성애 권리 단체나 낙태 옹호 단체를 맞히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진보주의자들에게 이 모든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곧 낙태 권리, 동성 결혼, 젠더 유동성, 강제적 다양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이러한 ‘의로운’ 대의를 위해 연방 자금을 투입하고자 할 것이다.

    소련은 붕괴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비자유주의적 네안데르탈인들이 들끓고 있으며, 자연 선택이 그들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는 그들을 억제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비진보주의자들에게 이 모든 기획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내가 여기서 관심을 두는 것은 이론적 문제다. USAID는 세속화 이론의 배후에 있는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창을 제공한다. 오랫동안 사회학자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기술 발전, 자급 농업에서 공장 임금 노동으로의 전환, 거대한 도시로의 국내 이주, 과학의 지적 지배 등으로 구성된 경제적·사회적 현대화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 사고, 감정을 약화시키는 문화적 힘을 거의 불가피하게 방출한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종교는 속도가 느려지고, 비틀거리며, 마침내 탈진하여 붕괴한다.

    조립 라인에서 핀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이 신비로 충만하다고 믿을 수 없고, 전등 스위치를 켜는 사람은 악마와 천사, 강생하신 하느님, 치유의 기적을 진지하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 현대 사회는 세속적인가? 단순하다.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DOGE와 USAID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비인격적인 사회적 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통을 고수하며 저항하는 이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내려진 결정, 집행된 예산, 행사된 권력의 이야기다. 이 점은 더 넓게도 적용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실제로 세속적이라면, 그것은 세속화를 의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치밀하게 자금이 투입된 노력의 결과다. 그것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케빈 N. 플랫이 그의 최근 저서 『세속화, 사회 질서, 그리고 세계사』에서 입증하듯이, 국가는 세속화라는 드라마의 주요 행위자였다. 아타튀르크는 오스만 제국을 이슬람적 기반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고, 서구 지향적인 이맘과 모스크를 장려했다. 이는 플랫이 “방어적 세속화”라 부르는 전략, 즉 팽창하는 서구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근대의 거대한 ‘주의(主義)’들은 모두 정부에 의해 의식적으로 시행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는 모스크바에서 조직되고 자금이 지원된 무신론, 세속화, 대량 학살의 거대한 전차였다.

    민족주의 운동은 사회적 규범과 열정을 신들로부터 분리하여 민족에 결속시킴으로써 세속화를 추진한다(이는 배를 자기 자신에게 묶어 정박하는 것과 비슷하다). 수세기 동안 국가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소수 집단에게 국가 언어와 정체성을 강제로 주입해 왔다. USAID 사태가 보여주듯, 진보적 자유주의는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어낸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 서구의 고등교육 역시 세속화의 또 다른 통로다. 오늘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엘리트들이 세속화를 촉진하는 것은, 그들이 수학한 세속적인 서구 대학들이 ‘세속적’이라는 것이 곧 ‘세련됨’을 의미한다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피터 버거는 한때 미국을 “스웨덴인들이 통치하는 인디언들의 나라”라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는데, 이는 통치하는 ‘스웨덴인들’이 세속적인 서구 대학(그중 일부는 실제로 스웨덴 대학)에서 수학했기 때문이다.

    세속화는 자연의 힘이 아니라 서구의 수출품이다. 그렇기에 세속화는 사회과학 이론이라기보다 탈식민주의 이후 서구의 ‘소프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백인의 의무’를 짊어지지 않으며, 노골적인 인종적 우월성 논리를 변호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때 사회학자들이 등장해 우리를 안심시킨다. 우리의 방식이 가장 발전된 방식이며, 불가피한 방식이며, 정상에 오르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길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국내에서도 작동한다. 세속화 이론은 세속 질서 안에서 작은 공간이라도 성스러운 질서를 보존하려는 전통주의자들의 사기를 꺾는다. “포기하라.”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당신들이 삼켜지기까지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USAID가 보여주듯, 그것은 돈과 권력, 그리고 강철 같은 결의의 문제다. 그리고 만일 세속 질서가 돈과 권력, 강철 같은 결의로 형성된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도 돈과 권력, 그리고 더 강한 결의가 필요할 뿐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2-28 07:1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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