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조선로동당 제9차 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로동당의 령도는 과학이고 승리”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의 령도를 절대적 진리이자 필승의 공식으로 규정하며, 김정은 총비서를 재추대하고 새로운 5개년 계획과 ‘전면적 국가부흥’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언적 언어가 과연 오늘 북한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설명해 주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 매체는 당의 령도를 “과학이고 진리이며 승리”라고 표현한다. 과학이란 본래 경험적 검증과 반증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정책이 실패하면 수정하고, 계획이 어긋나면 책임을 묻는 체계가 과학적이다.
하지만 북한식 정치 구조에서 당의 노선은 반증될 수 없는 전제다. 정책 실패는 외부 제재나 자연재해 탓으로 돌려지고, 내부의 구조적 문제는 공개적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체계에서 “과학”은 검증 가능한 방법론이 아니라, 비판을 차단하는 권위의 언어에 가깝다.
당의 령도가 과학이라면, 왜 지난 수십 년간 경제난과 식량난은 반복되어 왔는가. 왜 매번 “새로운 5개년 계획”이 등장할 때마다 ‘전환점’, ‘대변혁’, ‘새 시대’라는 표현이 되풀이되는가. 과학은 누적적 진전을 보이지만, 북한의 경제 담론은 순환적 구호에 머무르는 모습이다.
당대회는 사상·기술·문화의 3대 혁명을 재차 강조했다. 자주·자립·자위를 국가건설의 생명선으로 삼겠다는 기존 기조도 반복됐다.
문제는 ‘자립’이라는 명분과 실제 경제 구조 사이의 괴리다. 국경 봉쇄 이후 시장 활동이 위축되고, 대외 무역이 제한되면서 주민 생활은 더욱 압박을 받아 왔다. 내부 동원과 충성 경쟁으로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기술 혁신 역시 폐쇄적 체제 안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과학기술 발전은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와 개방적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북한은 정보 통제를 체제 유지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기술 혁명”을 외치면서 동시에 외부 정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구조는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다.
북한 매체는 “조선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위대한 당이 있기에 미래는 끝없이 밝다”는 신념이 굳게 간직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확인 가능한 사회적 합의라기보다는, 체제 특유의 정치적 서사에 가깝다.
자유로운 여론 형성, 정책 비판, 선거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전 인민적 신념’은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 오히려 통제된 공간에서 반복되는 충성 언어는 주민들의 실제 삶의 조건—식량, 의료, 이동의 자유, 정보 접근—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상징적 세계에 가깝다.
“승리”라는 표현 역시 질문을 필요로 한다. 승리는 군사력 강화인가, 핵 능력 고도화인가, 아니면 주민 생활의 실질적 향상인가.
국가의 승리가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체제의 지속을 의미할 뿐 공동체의 번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구호 속 ‘승리’와 주민 일상 속 ‘안정’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그 승리는 선언적 성과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8차 당대회 이후 “전면적 발전기”, “새 변혁 시대”를 강조해 왔다. 이번 9차 당대회 역시 같은 어휘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변혁이란 구호가 아니라 제도 변화, 권력 분산, 경제 구조 개편 같은 실질적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 로열패밀리 중심의 권력 재편, 군사 상징 행보, 충성 경쟁 강화가 ‘변혁’의 중심에 놓인다면, 그것은 체제 공고화이지 사회 구조의 개혁은 아니다.
“로동당의 령도는 과학이고 승리”라는 명제는 내부 결속을 위한 정치적 언어로는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검증을 요구하고, 승리는 생활의 개선으로 증명된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고, 정책 실패를 인정하며, 외부와 협력하는 개방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당의 령도가 과학이라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민의 삶이라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구호가 아닌 삶의 변화가 증명하지 못하는 ‘과학’은 결국 신념의 언어로 남을 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