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독자 제공 |
필리핀 당국이 중국 공산당 정보기관과 연계된 대규모 간첩 네트워크를 적발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체포된 인물 가운데는 필리핀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필리핀 내부 보안 체계에 대한 충격이 커지고 있다.
필리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3월 4일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은 스파이 활동과 관련된 중대한 국가안보 범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필리핀 시민들을 체포했으며, 이들이 모두 스파이 활동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하고 조사에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스파이 활동은 중단된 상태지만,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며 추가 연루자와 조직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필리핀 탐사보도 매체 ‘Rappler’의 단독 보도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주도한 스파이 네트워크는 필리핀 정부 내부 인력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활동해 왔다.
이 네트워크는 필리핀 국방부, 해안경비대, 군 관련 기관과 연결된 젊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접근했다. 이들에게 “자문”이나 “연구 협력”을 제안하면서 분석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공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유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민감한 내부 자료와 기밀 문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보안 당국은 이러한 방식이 “전형적인 단계적 포섭 방식”이라며, 처음에는 합법적 연구 활동처럼 보이지만 결국 군사·안보 정보 수집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필리핀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관련 간첩 사건을 잇따라 적발하고 있다. 특히 2025년 1월에는 중국 군 관련 인물로 알려진 덩위안칭(Deng Yuanqing)이 체포됐다.
필리핀 국가수사국(NBI)에 따르면 덩위안칭은 중국 육군공정대학 출신의 “통제공학 전문가”로, 필리핀에 약 5년간 잠복해 활동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차량에서는 군사 캠프, 발전소, 정부 청사, 대형 쇼핑몰 등 주요 시설을 외부에서 스캔해 3차원(3D) 지도를 생성할 수 있는 첨단 장비가 발견됐다. 이 장비는 건물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도 시설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 수사 당국은 덩위안칭이 단독 활동가가 아니라 조직화된 네트워크의 일원이며, 장기간 필리핀 내 기반을 구축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간첩 사건은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필리핀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해양 충돌과 외교 갈등을 반복해 왔다. 특히 필리핀 군과 해안경비대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중국 해경과 민병대 선박이 압박을 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필리핀 안보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군사적 압박과 함께 정보 수집 및 영향력 작전을 병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필리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 보안 법제의 대대적인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NSC는 현재 적용되고 있는 법률이 미국 식민지 시대에 제정된 ‘연방법 616호(Commonwealth Act 616)’에 기반하고 있어 현대적인 간첩 활동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반간첩법(Anti-Espionage Law) 등 두 가지 법률 제정을 의회에 요청했다. 이 법안들은 정부의 조사 권한을 확대하고, 외국 정보기관의 네트워크를 조기에 탐지·해체하며 국가 핵심 인프라와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NSC는 성명에서 “필리핀은 외국 세력의 비밀 활동과 기만적 개입으로부터 주권과 민주 제도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적 충돌뿐 아니라 정보전과 영향력 작전이 동남아 안보의 새로운 전선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내부 인력 포섭, 기술 정보 수집, 사회 영향력 확대 등 다양한 방식의 비전통적 안보 위협이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당국은 수사를 확대해 추가 연루자와 해외 연결망을 규명할 방침이며, 이번 사건이 동남아 지역 전체의 방첩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