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70] 없어서는 안 될 플라톤 ②
  • 리스 라버티 Rhys Laverty is editorial and research director at the Prosperity Institute. 프로스페리티 연구소 편집 및 연구 책임자

  • 보이타니는 플라톤을 시인으로 제시한다. 그는 고대의 다른 해설자들의 견해를 되살린다.

    플라톤이 숭고한 이유는 그가 호메로스와 경쟁하며 가장 위대한 시인과 겨루고 그에게서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주장이다. 플라톤은 루크레티우스와 같은 시인과 비교되는 수준이 아니라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그리고 『찬가』들과 같은 수준에 놓인다. 롱기누스(『숭고에 관하여』의 저자)는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플라톤 안에 “시적 소재와 언어”가 있다고 명확히 말한다.

    이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 국가에서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플라톤은 이렇게 가르쳤다”라는 표현을 경계해야 한다. 고대 전승에 따르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 비극 시인이었으며, 소크라테스를 만난 뒤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쉽게 죽지 않는다. 플라톤을 정밀하게 읽어 보면 그는 시적 표현을 통해서만 시인들의 허위를 폭로할 수 있다는 역설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티마이오스』의 시성은 특히 아름다움이라는 주제 속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창조주가 왜 세계를 창조했으며 왜 그렇게 창조했는지 설명하는 장대한 서두에서 드러난다.

    “최고의 존재가 가장 아름다운 것 외에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으며, 항상 그랬다.”

    또한 그것은 우주의 창조 과정과 인간의 형성을 설명하는 매우 정밀한 기하학적·천문학적 모형 속에서도 드러난다. 동시에 인간의 영혼이 죽음 이후 별들로 돌아간다는 인상적인 이미지에서도 드러난다.

    보이타니는 이러한 이교 철학의 이미지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교 안으로 들어왔는지를 설명한다. 때로는 그의 해석이 장대한 추측처럼 보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J. M. W. 터너의 그림 「빛과 색채(괴테의 이론) - 대홍수 다음 날 -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다」를 언급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철학자들과 시인들의 텍스트를 정밀하게 읽어 제시하는 탄탄한 논증을 제공한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다양성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보이타니의 폭넓은 접근은 과도하게 전문화된 시대 속에서 신선할 뿐 아니라 진정한 인문주의자의 표징이기도 하다.

    책의 부제가 암시하듯, 그의 연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단테이다. 단테는 『신곡』 「천국편」에서 『티마이오스』를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거기서 베아트리체는 신적 적응의 교리를 설명한다.

    “성경은 인간의 이해 능력에 맞추어 / 하느님께 손과 발이 있다고 말하지만 / 실제 의미는 그렇지 않다.”

    낙원속의 티마이오스  플라톤에서 단테를 넘어선 은유와 아름다움
    낙원속의 티마이오스 : 플라톤에서 단테를 넘어선 은유와 아름다움

    그녀는 이어서 『티마이오스』를 언급하며, 영혼이 별에서 왔다가 다시 별로 돌아간다고 믿은 플라톤의 생각이 비그리스도교적일지라도 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의 화살은 어떤 진리에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 진리란 별과 하느님 사이의 적절한 상응 관계이다. 즉 별은 철학적 논리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을 설명하는 시적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언어와 창조 세계에서 가져온 이미지의 한계 안에서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게 해 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티마이오스』는 단지 많이 읽힌 책이 아니라 거의 없어서는 안 될 책이 되었다.

    보이타니의 연구는 헬레니즘화 논쟁의 깊은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이론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주장한다. 헬레니즘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리스 철학과의 결합이 그리스도교의 히브리적 뿌리에서 벗어난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 지나치게 합리주의적인 이교 철학의 틀 속에 그리스도교가 억지로 끼워 맞추어진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티마이오스』의 두 번째 특징, 곧 시적 언어의 힘을 종종 간과한다. 보이타니는 플라톤의 논리가 그리스도교 교리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만 읽힌 것이 아니라, 그의 언어가 신적 아름다움으로 영혼을 사로잡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너무도 잘 알아보는 아름다움이다.

    플라톤의 또 다른 시적 정점은 아마도 『파이드로스』 일 것이다. 거기에는 날개 달린 영혼이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며 올라가 그 너머의 세계를 엿보는 황홀한 묘사가 등장한다. 『티마이오스』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아름다움을 다루며, 여기에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느끼는 에로스를 더한다.

    물론 이러한 시적 이미지는 때로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유혹이 될 수도 있다. 불멸의 하느님의 영광을 인간의 형상과 같은 우상으로 바꾸어 버릴 때 그것은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시는 인간의 약함 속에서도 창조주를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늘로 오르는 계단은 인간 언어에 있어서는 마치 외줄타기와 같다. 보이타니의 책은 『티마이오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 서방이 어떻게 그 균형을 유지하려 애써 왔는지를 보여 주는 감동적이고 학문적인 연구이다. 바로 이러한 위대한 텍스트들에 대한 세심한 독서가 수 세기 동안 ‘진·선·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지탱하고 심화시켜 왔다.

    만약 우리의 그 이해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우리 또한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끝>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3-0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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