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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는 이란 시위대 |
유엔 산하 난민기구인 유엔난민기구(UNHCR)가 최근 이란 상황을 “대형 인도주의 비상사태”로 선포했지만,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대응이 뒤늦은 대응이자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UNHCR 긴급프로그램지원 국장 이토 아야키는 중동 지역의 전쟁과 충돌이 대규모 피란을 촉발하고 있다며 상황을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대형 인도주의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UNHCR에 따르면 레바논에서는 약 10만 명의 국내 실향민이 발생했고, 시리아 난민 일부가 다시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 또한 이란에서도 분쟁 초기 며칠 동안 약 10만 명이 국내에서 피란했으며, UNHCR 사무소에는 매일 수백 통의 도움 요청 전화가 걸려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일부 전문가와 인권단체에서는 UNHCR의 ‘선택적 인도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란 시위대 학살에는 침묵
비판의 핵심은 이란 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한 UNHCR의 침묵이다. 최근 몇 년간 이란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보안군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시민이 사망하거나 체포됐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당시 이란 당국이 실탄 사용과 집단 체포, 고문 등을 동원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이 벌어질 당시 UNHCR은 난민 발생 가능성이나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강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정치 분석가들은 “정권이 자국민을 탄압하는 상황에서는 조용하다가, 분쟁으로 난민이 발생하면 인도주의를 강조하는 모습은 국제기구의 신뢰를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인도주의는 선택적이어선 안 된다”
문제는 이런 ‘선택적 관심’이 국제기구의 도덕적 권위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유엔 시스템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특정 국가나 정권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중동의 경우 난민 문제와 인권 문제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혀 있어 국제기구의 대응이 정치적 고려에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한 인권 연구자는 “난민 문제는 단순히 전쟁의 결과만이 아니라 독재와 인권 탄압의 결과이기도 하다”며 “정권의 폭력에는 침묵하면서 난민 문제만 강조한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제기구 신뢰의 시험대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번의 발표를 넘어 국제기구의 공정성과 신뢰성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UNHCR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2,500만 명에 달하는 피란민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비판자들은 인도주의적 대응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국제사회가 그 메시지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인권과 인도주의를 주장하는 기관일수록 더 일관된 기준과 원칙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난민을 보호하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난민을 만들어내는 폭력과 독재에 대해서도 같은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국제기구의 인도주의는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