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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벌어진 군사 충돌이 장기화되면서 국제 질서의 또 다른 축인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겉으로는 두 나라 모두 전쟁의 확산을 경계하는 듯한 외교적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이 가져오는 경제적·전략적 효과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중동 전쟁은 발발 이후 10여 일을 넘기며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예상치 못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반면, 중국은 에너지 의존 구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러시아, 유가 상승이 가져온 ‘전략적 행운’
전쟁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체감하는 국가는 러시아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주었고, 이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에게 막대한 수익 증가를 의미한다.
러시아의 기준 유종인 우랄 원유 가격 역시 크게 상승해 배럴당 약 90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러시아 정부가 설정한 예산 기준 가격인 59달러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친크렘린 성향 매체들은 유가가 기준 가격보다 11달러 상승할 때마다 연말까지 약 280억 달러의 추가 재정 수입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중동 긴장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마비시키면서 러시아 석유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의 운송이 불안정해지자, 일부 국가들은 러시아 원유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다. 에너지 분석업체 Kpler에 따르면 인도의 러시아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120만 배럴까지 증가했다. 이는 전쟁 이전의 약 80만~85만 배럴 수준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려진 전선’
중동 전쟁은 또 다른 측면에서 러시아에 전략적 여유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관심이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외교 의제에서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특히 서방 국가들의 군사 자원이 중동으로 일부 재배치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키이우 정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방공 체계는 서방이 공급하는 미사일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러한 무기 공급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유럽 지도부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 지도부는 최근 외교 회의에서 “지금까지 이 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러시아일지도 모른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유가 상승으로 러시아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추가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에너지 의존 구조의 취약성 노출
반면 중국의 입장은 훨씬 복잡하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석유 수입 가운데 약 50~55%가 중동에서 들어왔으며, 그중 상당한 비중이 이란산 원유였다.
특히 중국은 제재로 인해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이란산 원유를 대량으로 구매해 왔다. 이란 석유 수출의 약 90%가 중국으로 향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구조는 평상시에는 중국 경제에 유리했지만,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제조업과 수출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산업 비용 증가와 경제 성장 둔화라는 정치적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말뿐인 중재 외교’
이 때문에 중국은 이번 전쟁에서 비교적 신중한 외교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외교 당국은 연일 군사 충돌 중단과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중국 중동 특사는 각국에 군사 행동 중단과 긴장 고조 방지를 요구했고, 중국 외교 수장 역시 “이 전쟁은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과 달리 중국이 실제로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국제 분쟁에서 공개적으로 한 편에 서는 것을 피하고, 외교적 발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현재 약 3개월 분량의 전략적 석유 비축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적인 에너지 충격은 견딜 수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적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쟁이 드러낸 강대국의 다른 현실
이번 중동 전쟁은 국제 정치에서 강대국들이 처한 서로 다른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러시아에게 전쟁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국제 관심 분산이라는 두 가지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반면 중국에게는 에너지 의존 구조라는 취약성을 다시 한 번 노출시키는 사건이 되고 있다.
결국 중동 전쟁의 여파는 전장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에너지 시장과 외교 전략, 그리고 세계 강대국들의 계산 속에서 이 전쟁은 또 다른 국제 정치의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