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78] 악덕과의 싸움
  • R. R. Reno is editor of First Things. 편집장

  • 내가 살아온 동안 미국 사회는 악덕에 대한 광범위한 용인을 통해 크게 변모하였다. 많은 지역에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고,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도박 역시 합법화되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대마초 사용과 정기적인 도박은 증가했다.

    2025년에는 성인의 17퍼센트가 매일 대마초를 피운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2020년의 8퍼센트에서 증가한 수치이다. 1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에는 아무도 스마트폰에 스포츠 베팅 앱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18세에서 49세 사이 미국 남성의 절반이 계정을 개설했다. 그리고 음란물은 인터넷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이는 연방 대법원에 의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고 있다.

    사회적 규범 역시 변화하였다. 불법 약물의 공개적 사용이 널리 용인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은 케타민과 기타 물질을 사용하며, 이러한 약물들이 오직 의료적 용도로만 제한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조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요커는 “throuples”과 같은 다양한 성적 관계 형태를 찬양하는 에세이를 싣고 있다. 활동가들은 “성 노동”에서 낙인을 제거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에 대해 많은 지방정부는 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찰스 페인 레먼은 National Affairs에 기고한 글 「악덕 금지를 위한 논거」에서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패배해 왔다고 지적한다. 거대한 사회적 흐름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먼은 우리 역시 책임의 일부를 져야 한다고 본다.

    도덕적 규범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너무 자주 공적 논쟁의 지배적인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틀은 다음과 같은 전제 위에 서 있다. 즉,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사적인 삶에서 원하는 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 대부분 동안 이러한 방식의 사적 삶의 자유지상주의 - 오직 “해악 원칙”에 의해 제한되는 자유 - 는 지배적이지 않았다. 미국 헌법 질서는 각 주(州)에 이른바 “경찰권”을 부여하는데, 이는 시민들의 건강, 안전, 그리고 도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 권한은 널리 사용되었다. 네바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는 도박을 금지했다. 많은 주는 주류 판매에 상당한 제한을 두었다. 성적 일탈은 범죄로 간주되었고, 그 밖의 여러 방식으로 개인의 행동이 규제되었다.

    그러나 레먼이 지적하듯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관점에 변화가 나타났다. 연방 대법원은 피임 사용을 금지한 코네티컷 주 법을 무효화하기 위해 “사생활의 권리”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어 냈다. 이후 이 권리는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법률을 무효화하는 데까지 확대되었다. 이어서 대법원은 동성 간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률도 폐기하였다. 이때는 다른 권리를 근거로 삼았지만 논리는 동일했다. 사적인 행위는 법률로 규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적 결과를 낳는 행위, 곧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에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실제로 “해악 원칙”에 대한 호소가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무엇이 해악을 구성하는지에 대해 합의할 때뿐이다. “혐오 발언” 개념이 분명한 예가 된다. 진보주의자는 혐오 발언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포용과 반차별을 귀중한 사회적 선으로 여기며, 역사적 배제와 차별의 패턴을 강화한다고 여겨지는 말들이 이러한 선을 위협하고 실제로 해를 끼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진보주의적 관점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혐오 발언 문제는 정부 권력이 아니라 예의와 품위의 기준에 의해 규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해악 원칙이 실질적인 도덕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분명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그의 저서 ‘버지니아 주에 관한 노트’에서 종교의 자유를 해악 원칙에 호소하여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오직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에만 미친다. 그러나 내 이웃이 스무 명의 신이 있다고 말하든, 아무 신도 없다고 말하든, 그것이 나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주머니를 털지도 않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같은 책에서 우리는 제퍼슨이 노예 소유의 해악을 걱정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노예에게 가해지는 해악이 아니라 백인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해악이었다. 그는 노예제도가 “한쪽에서는 가장 끊임없는 전제정, 다른 한쪽에서는 비굴한 복종”을 포함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것을 보고 그것을 모방하는 법을 배운다.” 노골적인 지배를 목격하는 일이 어떻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예절과 도덕을 타락시키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기적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것은 주머니가 털리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해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의 행동은 우리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으며, 이는 곧 영혼에 대한 해악이다. 제퍼슨은 공개적으로 실천되는 거짓 종교가 가져오는 타락의 결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가 참된 종교의 중요성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는 미국의 민주적 정신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두드러진 덕목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노예제도의 현실에 노출되면서 그 정신이 타락할 것을 두려워했다.

    도덕을 규제하는 대부분의 입법 뒤에는 제퍼슨의 이러한 논리와 유사한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젊은 세대에 대한 염려가 그 이유가 된다. 무질서하고 기능이 붕괴된 악덕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다음 세대에서도 동일한 특성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악덕을 억제하는 법을 제정할 것이다.

    다른 경우에는 도덕 입법이 부권적 원칙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 곧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권적 의무는 음란물에 관한 관습법의 유명한 기준인 ‘히클린 테스트’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 기준은 금지되어야 할 자료를 “그러한 부도덕한 영향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부패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1950년대 연방 대법원은 이 기준을 거부하고 훨씬 느슨한 기준을 채택하였다. 이 변화는 더 큰 흐름의 일부였다. 과거의 부권주의는 우리의 이웃 시민들이 자신의 도덕적 약점에 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덕을 규제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공동의 책임을 거부하고, 부권주의를 자율성의 적으로 조롱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관된 것도 아니다.

    담배에 대한 반대 운동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뉴욕과 같은 주에서는 시민권 법률의 확대 적용이 사실상 LGBTQ 교리에 대한 반대를 범죄화하고 있다.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자유를 제한할 정당성을 제공하는 해악에 대한 겉보기에 중립적인 판단 뒤에는 실질적인 도덕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해악을 진보주의적 가치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레먼은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에게 더 이상 자신들의 도덕적 판단을 해악의 증명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논증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인간의 번영을 촉진하는 좋은 사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사회는 악덕이 악덕이기 때문에 그것을 억제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회피해서도 안 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6-03-15 08:44]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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