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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사의 표명 |
선관위원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적 불신을 잠재울 해답이 될 수 있는가.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퇴진이 아니다.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은 선거관리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영역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 왔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관리 문제를 넘어섰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헌법기관의 권위에 걸맞은 책임성과 투명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위원장 한 명이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를 봉합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보기에는 책임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사퇴하는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 뒤에 남아 있는 조직문화, 채용구조, 내부 감시체계, 자료 공개 태도, 선거관리 절차 전반의 불투명성이다.
특히 선관위를 둘러싼 ‘가족회사’ 논란은 국민의 상식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은 어느 기관보다 엄격해야 한다. 공정성을 요구하는 기관이 내부적으로는 특혜와 폐쇄성의 의혹을 받고 있다면, 국민에게 어떻게 선거 결과를 신뢰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거관리기관은 권위로 존중받는 곳이 아니라, 투명성으로 검증받아야 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K-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서 평가받아 왔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뤄낸 나라라는 명예가 있었다. 그러나 선거관리의 신뢰가 무너지면 그 모든 명예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말하지만, 검증할 수 없는 선거는 꽃이 아니라 장식에 불과하다.
오늘의 상황은 제2의 4·19 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4·19 혁명의 본질은 단지 정권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정과 불의에 맞서 국민이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고 외친 자유민주주의의 양심이었다. 당시 청년과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거리로 나섰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오늘의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 이상 추상적 구호만으로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절차의 공정성, 자료의 공개, 감시 가능한 시스템, 책임지는 기관을 요구한다. 선거가 국민의 것이 되려면 청년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신뢰하지 않는 선거제도는 미래세대의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청년들의 헌신은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선관위원장 사퇴라는 상징적 조치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해체 수준의 근본 개혁이다. 첫째, 선관위의 채용·인사·승진 구조 전반에 대한 전면 감사가 필요하다. 둘째, 사전투표와 개표, 투표지 보관과 이송, 전산 시스템 운영 전반을 국민이 검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셋째, 선거관리 과정에 대한 외부 독립감사와 국회 차원의 제도개혁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선거 관련 자료 보존과 공개 기준을 강화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믿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확인하라”는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선관위는 스스로를 성역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헌법기관이라는 지위는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패가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윤리와 더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는 자리다. 선거관리기관이 국민의 감시를 불편해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의 위험 신호다.
선거는 정권을 위한 절차가 아니다. 선거는 국민 주권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그 통로가 막히고, 흐려지고, 오염되었다는 의심이 커진다면 국가는 즉시 고쳐야 한다. 국민의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바지 사장이 물러난다고 회사가 달라지지 않듯,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민주주의의 명예를 말할 수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것은 기관의 체면이 아니라 국민의 주권이다. ‘K-민주주의’의 이름을 지키려면 선관위는 국민 앞에 완전히 열려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