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세종 정부청사 전경 |
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 관저 이전을 둘러싼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전 과정의 절차와 비용, 의사결정의 적정성을 따지는 일은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국가사업이라면 어느 정부의 일이든 성역 없이 검증받아야 한다.
그런데 과거 정부의 관저 이전을 문제 삼는 현 정부가 이번에는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새로 짓겠다며 또 한바탕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정확한 사업 규모와 필요성, 기존 시설의 활용 가능성, 향후 유지·관리 비용을 철저히 따져야 하겠지만, 국민이 느끼는 첫인상은 분명하다. 과거의 이전 비용을 비판하던 정치권이 정권을 잡자 더 큰 규모의 신축 사업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내로남불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집무실은 권력자의 기념물이 아니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어야 한다. 집무실의 위치와 외관, 규모를 정권의 상징처럼 다루기 시작하면 행정은 실용성을 잃고 정치적 과시의 무대로 변질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청와대를 버리고, 집무실을 옮기고, 관저를 고치고, 또 다른 도시에 새로운 집무실을 짓는다면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가. 결국 국민이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다.
세종시는 행정수도 기능을 분담한다는 명분으로 조성됐지만, 그 효율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중앙부처가 서울과 세종으로 나뉘면서 공무원들이 회의와 보고를 위해 오가고, 이동 시간과 출장비가 늘어나며, 의사결정이 오히려 지연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회와 대통령실, 주요 기관이 서로 떨어져 생기는 행정적 비효율도 이미 국민이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건물을 하나 더 세우는 일이 아니다. 분산된 행정체계가 실제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지, 서울과 세종의 기능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기존 시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재검토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런 이성적인 논의보다 “집무실을 어디에 짓느냐”는 상징 경쟁이 앞서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가채무 증가와 저출생·고령화, 청년층의 주거난과 일자리 불안, 지방소멸이라는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복지와 국방, 교육, 의료 등 어느 분야도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자신들이 사용할 건물과 공간에는 유난히 관대하다. 국민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권력기관의 청사와 집무실은 새로 짓겠다고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세상이 바라볼 때 대한민국은 돈이 남아도는 나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멀쩡한 시설을 두고 또 다른 집무실을 짓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과 신축을 반복한다면 “참 돈 많은 나라”라는 비아냥을 자초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한민국은 결코 돈이 넘치는 나라가 아니다. 국가가 쓰는 모든 돈은 국민이 땀 흘려 낸 세금이거나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이전 정부의 관저 이전은 잘못이라며 수사와 재판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현 정부의 집무실 신축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과거 정부에 요구했던 절차적 정당성, 비용의 투명성, 안전성 검토, 예산의 적정성을 현 정부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기준이 정권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법치도, 책임정치도 아니다.
세종시 대통령 집무실이 정말 필요한가. 기존 정부청사나 공공시설을 활용할 방법은 없는가. 대통령이 세종에서 실제로 얼마나 자주 근무할 것인가. 건설비뿐 아니라 경호·보안·통신·교통·유지관리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그 비용에 상응하는 행정 효율과 국민적 편익이 있는가. 정부는 이 질문들에 구체적인 수치와 자료로 답해야 한다.
필요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면 사업을 멈추는 것이 옳다. 이미 예산이 편성됐다는 이유, 정치적 약속이었다는 이유,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구호만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지역 발전은 대통령 집무실 건물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과 일자리, 교육과 의료, 교통과 문화 기반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거대한 관공서 건물을 세워 놓고 균형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낡은 토건행정에 불과하다.
정치권은 제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가의 품격은 대통령이 사용하는 건물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국민의 세금을 자기 돈보다 더 아끼며, 다음 세대의 부담을 먼저 생각하는 절제에서 나온다.
언제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공간을 옮기고 새로 짓는 소동을 반복할 것인가. 언제 철들 것인가. 우리가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화려한 집무실과 거대한 청사가 아니라 건전한 재정, 효율적인 행정, 책임 있는 정치다.
최소한 빚과 죄만큼은 후대에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세종시 대통령 집무실 신축 논란은 단순한 건축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정부와 국회는 공사를 서두르기 전에 먼저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이 건물이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욕심을 위한 것인가.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