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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 노동신문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을 앞두고 김일성을 “위대한 령장”, “참다운 인민의 수령”으로 치켜세우며 또다시 이른바 ‘전승 신화’ 선전에 나섰다.
룡포혁명사적지를 배경으로 김일성의 전시 활동을 미화하고, 이를 김정은의 지도력과 연결함으로써 3대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전형적인 우상화 기사다.
그러나 노동신문의 장황한 감상과 찬양을 걷어내고 나면, 그 속에 남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뒤집은 선전 문구뿐이다.
노동신문은 김일성이 “미제와 추종세력들을 무릎 꿇게 하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것은 어느 한쪽의 항복을 선언한 문서가 아니라 전투 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정전협정이었다. 전쟁은 평화협정으로 종결되지 않았고, 한반도는 지금까지도 법적으로 정전 상태에 놓여 있다.
정전협정을 미국의 항복서라고 부르는 것은 전쟁의 결과를 조작해 체제 선전의 재료로 활용하려는 북한 당국의 오래된 수법이다. 북한은 전쟁을 먼저 시작한 책임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춘 채, 자신들이 세계 최강국을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허구적 서사를 주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남침으로 시작됐다. 전쟁으로 한반도 전역이 폐허가 됐고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고향과 가족을 잃었다. 그러나 노동신문 기사에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도, 주민들이 겪은 죽음과 굶주림도,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고통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산골의 개울물과 소나무, 농촌집의 밥그릇과 이불 같은 소재를 동원해 김일성을 검소하고 용감한 지도자로 묘사한다. 김일성이 차에서 내려 개울을 건넜다는 이야기, 적기가 나타났음에도 연설을 계속했다는 일화 등도 객관적인 검증보다 지도자의 초인적 면모를 부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혁명사적지는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고 교훈을 얻는 공간이 아니라, 최고지도자 일가를 신격화하기 위한 정치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노동신문이 “대를 두고 길이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역사 자체를 보존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 당이 허용한 기억만을 후대에 주입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기사에서는 2018년 룡포혁명사적지를 방문한 김정은이 김일성의 “담력과 배짱”, “검소한 생활”을 찬양했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소개한다. 과거 김일성의 전쟁 신화를 현재의 김정은에게 계승시키면서, 김정은 역시 “희세의 령장”이라는 결론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다.
이는 북한 우상화 선전의 전형적인 구조다. 김일성의 항일투쟁과 한국전쟁 서사를 과장하고,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덧붙인 뒤, 김정은을 이 모든 업적을 완성할 지도자로 포장한다. 사실과 검증은 사라지고 혈통과 충성만이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노동신문은 “절세위인을 모셔야 인민의 존엄을 지키고 행복을 꽃피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존엄과 행복을 훼손해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개인숭배와 세습독재다. 모든 국가 자원과 권력이 지도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주민의 생명과 자유, 생활은 언제든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희생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진정으로 전쟁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려 한다면 지도자의 영웅담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전쟁 발발의 책임과 민간인 피해, 포로와 납북자 문제, 분단이 남긴 비극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 전쟁을 승리의 축제로 포장하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며, 또 다른 군사적 모험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선동이다.
정전협정 73주년을 앞두고 북한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전승’이라는 허구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대외 군사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정책을 중단하고 주민의 생명과 평화를 우선하는 길로 나서야 한다.
룡포혁명사적지의 숲과 개울이 증언해야 할 것은 수령의 신화가 아니다. 한 지도자의 잘못된 전쟁 결정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한반도 전체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가 하는 냉엄한 역사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