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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러시아가 쿠르스크에 북한군의 전투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겠다고 한다. 안드레이 벨루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이른바 “키이우 정권의 네오나치 세력으로부터 쿠르스크를 해방시켰다”며 그들의 전투를 ‘영웅적 행위’로 추켜세웠다. 침략전쟁의 책임을 뒤집고 북한군 파병을 미화하려는 러시아식 선전의 결정판이다.
무엇보다 “네오나치 세력으로부터 쿠르스크를 해방했다”는 표현부터가 전쟁의 원인과 순서를 뒤집는다. 오늘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만 떼어놓고 보면 러시아는 이를 영토수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배경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삭제한 채 우크라이나를 ‘네오나치’로 규정하고 북한군까지 ‘해방군’으로 둔갑시키는 순간 그것은 사실의 설명이 아니라 정치선전이 된다.
러시아가 개전 이후 반복해 온 ‘탈나치화’ 논리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상대를 악마화하면 침략은 ‘정의의 전쟁’으로 포장되고, 점령은 ‘해방’이 되며, 전사자는 ‘영웅’이 된다. 이번에는 그 선전 공식 속에 북한군이 들어갔다.
이제 러시아는 이들을 동맹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돌로 된 기념비까지 세우겠다고 한다. 기념비가 세워진다고 전쟁의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기념비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밀착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무기와 병력을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 정권에 정치적·군사적 후원을 제공하는 관계가 점점 더 제도화되고 있다. 2024년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은 이제 문서 위의 동맹을 넘어 실제 전쟁터의 혈맹으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북한 정권이 자국 청년들의 희생을 체제선전의 자산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사한 병사 개인의 삶과 가족의 슬픔보다 ‘최고사령관의 명령’, ‘국제주의적 위훈’, ‘조러 친선’이 먼저 등장한다. 러시아도 이를 적극 이용한다. 북한군의 희생을 기념비와 훈장, 행사로 포장하면서 파병의 정치적 책임과 전쟁의 정당성 문제를 가리는 것이다.
벨루소프 장관은 푸틴과 김정은 덕분에 “동맹적이고 형제적인 관계”가 수립됐다고 자평했다. 문제는 그 ‘형제애’의 대가를 누가 치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푸틴과 김정은이 아니라 전장에 보내진 북한 청년들이다.
더구나 러시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묘한 결론에 이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발생한 전쟁에서,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의 일부 전투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네오나치로부터 러시아를 구한 해방군’이 된다. 침략의 출발점은 사라지고 전쟁 중 한 장면만 확대해 역사의 원인과 결과를 바꾸는 전형적인 가짜뉴스 선전술이다.
쿠르스크에 세워질 북한군 기념비를 우리는 단순한 전쟁기념물로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러시아와 북한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전쟁서사의 상징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나치 전쟁’으로, 북한군 파병을 ‘해방전쟁 참가’로 미화하고, 북한은 이를 김정은의 군사적 업적으로 선전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기념비를 세워도 진실까지 돌로 굳힐 수는 없다. ‘키이우 네오나치 정권으로부터 쿠르스크를 해방했다’는 구호는 전쟁의 전체 맥락을 의도적으로 지운 선전이다. 북한군의 희생을 ‘영웅적 위훈’으로 장식하는 것 역시 그 청년들이 왜 그 전쟁터에 있어야 했는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덮지 못한다.
쿠르스크에 세워질 기념비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푸틴과 김정은의 ‘형제적 동맹’이 아니다. 권력자들이 만든 전쟁과 동맹 때문에 타국의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북한 청년들의 비극이어야 한다.
역사는 기념비가 아니라 사실로 기록된다. 그리고 선전으로 만들어진 ‘해방군 신화’는 언젠가 반드시 그 진실 앞에서 무너질 것이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