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밴스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 『성찬 Communion』에서 오늘날 연애의 세계를 헤쳐 나가야 하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럽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hookup culture (일회성 만남 문화)는 여러 면에서 좋지 않았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적 성 윤리의 완벽한 모범이었던 것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저지르던 실수들은 평범한 실수들이었다. 그런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울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옛 적수, 곧 hookup culture는 이제 삭막한 현실의 ‘사람을 상품처럼 고르는’ 데이팅 앱, 끝도 없이 제공되는 온라인 포르노그래피, 그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증폭되는 남녀 성별 전쟁 콘텐츠로 대체되었다. 과거의 잘못들에 마지못해 향수를 느끼는 보수주의자가 밴스만은 아니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 하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우리가 문화적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데 동의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분명 무언가가 달라져야 한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One Night Only』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대담하고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놓는다. 영화는 감히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성을 둘러싼 아무런 규칙이나 제한도 없는 세상이, 사실은 성을 강력하고 사람을 미치게 만들며 심지어 약간은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보다 오히려 덜 섹시하고, 더 나아가 덜 충만한 세상이라면 어떨까?
이 영화는 뉴욕시에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데이팅 앱 문화와 빅테크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며, 공중보건 체제를 부드럽게 조롱하면서 내미는 가운데 손가락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영화는 ‘순결 문화(purity culture)’에 대한 가장 혈기왕성한 변론이거나, HBO의 『Girls』가 종영한 이후 hookup culture를 가장 은근하게 반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대단히 『First Things』다운 섹스 코미디다.
설정 자체는 충분히 단순하다. 영화 속 사건이 벌어지기 3년 전, 의회는 1년 중 364일 동안 혼인 밖의 성관계를 불법으로 만드는 하나의 ‘명령’을 통과시켰다. 영화 전체는 그 명령이 해제되는 단 하루, 흡사 바쿠스 축제와도 같은 방탕한 밤에 벌어진다.
『One Night Only』는 가족이 함께 볼 만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부분 노출이나 모자이크 처리된 나체 장면이 적지 않고, 외설적인 언어도 넘쳐난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추구하는 데 인위적인 제한이 가해지면서, 그들의 성적 욕망에는 오히려 일종의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생겨난다. 성을 둘러싼 사회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추적과 구애가 앱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이 된다.
성관계를 갖기 직전 한 등장인물은 말한다.
“난 정말 이 모든 것이 내게서 섹스를 망쳐버릴 줄 알았어. 그런데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줬지. 이 단 한 번의 밤을 누구와 함께 보내기로 선택할 것인가? 선택 그 자체가 낭만적이야. 어쩌면 이 문제에 관한 한 파시스트들이 옳았을지도 몰라.”
주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성을 지극히 깊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라보는 부통령과 다른 보수주의자들의 편에 은근히 서기를 감히 시도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또한 ‘파시스트들’과 그들의 ‘명령’에 대한 언급에도 거부감을 보인다.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진 또 다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교묘하게 암시하는 표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던킨도너츠, 에퀴녹스, 듀오링고가 내놓은 귀여운 기업 광고들조차 정부 정책에 기꺼이 동조하는 듯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체 정보 추적과 명령 집행을 별다른 조직적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작한, 허가되지 않은 성관계를 경고하는 그림문자 경고문과 구호들이 도시 곳곳에 넘쳐난다. 빠진 것이 있다면 ‘음행 금지’를 설파하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종교적 우파가 극단적으로 특수한 형태의 혼인 장려책을 강요하는 모습을 조롱하면서도, 동시에 성처럼 강력한 것이 제대로 된 틀을 갖추려면 사회적 규범이 필요하다는 보수주의적 주장에 진정한 공감을 드러낸다.
모니카 바바로가 연기하는 여주인공의 말은 마치 현대 페미니즘을 비판해 온 몇몇 보수주의 사상가의 글을 읽은 사람처럼 들린다. 그녀는 친구에게 원나이트 스탠드에서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가질 확률은 약 2.8%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섹스를 원해…… 하지만 나를 그저 공허하게 만들 뿐인 섹스는 원하지 않아.”
그녀의 연인은 칼럼 터너가 연기하는 친근한 피자가게 주인이다. 두 사람의 여러 만남은 늦은 밤 함께 피자를 먹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바바로가 연기하는 인물이 그의 익살스러운 유머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자신의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그의 전문성과, 거의 관능적이라고 할 만큼 정성을 다해 피자를 만드는 모습에는 어떤 데이팅 앱도 담아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두 사람이 진정한 관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뉴욕 곳곳을 함께 뛰어다니며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단 하루의 밤’이 저물어 갈 무렵 두 사람이 마침내 함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찾고 있던 것이 단순한 ‘가벼운 관계’ 이상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 명령 때문에 서둘러 성욕을 해소하고, 그 결과 자신들의 관계가 너무 일찍 끝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명령이 이기게 둘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차라리 1년을 기다리며 서로를 더 알아가기로 한다. 당장 그 순간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말이다.
성혁명은 아무런 책임이나 구속도 없는 성관계가 펼쳐지는 광활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약속했다. 그러나 인격성이 제거된 친밀함과 전자적 에로티시즘이 사회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여성들―그리고 적지 않은 남성들 역시―우리가 맞이한 이 ‘용감한 신세계’의 연애 현실에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휴 헤프너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꿈꾸었던 성적 유토피아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 세계가 가르쳐 온 정결의 이상조차 새로운 성적 시장 속에서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모든 것이 수렴해 버린 최저 공통분모는 결국 고독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성관계조차 없는 상태다.
『One Night Only』는 위로부터 개인의 자유에 가해진 제한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사람들을 조롱하는 동시에, 공격적인 탈자유주의적 도덕주의가 만들어 낸 화려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자유를 사회적으로 제한하던 과거의 모든 장벽을 제거하면, 그와 함께 그들이 서로 만나고, 연애하고, 배우자를 찾도록 이끌어 주었던 안전장치까지 무너뜨리게 된다.
할리우드를 포함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정표가 없는 사회는 더 큰 자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불안과 신경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지금, 『One Night Only』는 우리의 성적 자유에 스스로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이 결국에는 오히려 더 많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