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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이번에는 제철공정에서 나오는 슬래그와 저마르카 시멘트를 이용한 방파제 건설을 새로운 ‘과학기술 성과’로 내세웠다.
그러나 조선신보 보도만으로는 이것이 과연 독창적인 기술인지, 실제 장기간 해양환경을 견딜 수 있는 공법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미 국제 건설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기술을 북한식 ‘자력갱생 성과’로 확대 포장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신보는 1일 강원도 1월8일수산사업소가 야금기지에서 폐기물로 발생하는 슬래그와 저마르카 시멘트를 이용해 방파제용 부재를 제작하는 공법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고마르카 시멘트와 골재, 강재, 각종 내류산염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해양구조물을 건설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했다.
그러나 슬래그를 시멘트 혼화재로 사용하는 기술 그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로슬래그 미분말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콘크리트의 염화물 침투 저항성과 해양환경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재료로 연구·사용돼 왔다. 한국의 국가건설기준 역시 해양 콘크리트에 고로슬래그 미분말이나 고로슬래그 시멘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는 공법의 진정한 기술적 가치는 단순히 ‘폐슬래그를 이용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배합비와 제조공정을 적용했고 염화물 침투·동결융해·황산염 침식·압축강도·장기 균열과 같은 해양구조물의 핵심 성능을 어느 기준으로 검증했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조선신보는 “세기가 예상 밖으로 매우 높았다”, “경제적 실리가 매우 크다는 것이 확증됐다”고 주장할 뿐 시험기관과 측정 기준, 구체적인 강도 수치, 시험체 수, 장기 노출시험 결과 등 기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핵심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방파제와 부두 같은 해양시설은 초기 압축강도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염분과 파도, 반복적인 습윤·건조 및 동결융해를 견딜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실제로 국제 연구에서도 고로슬래그를 적절히 사용하면 염화물 침투 저항성이 향상되는 등의 장점이 확인되고 있지만, 배합비와 양생 조건, 해양환경에 따라 성능이 달라질 수 있어 장기적인 검증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최근 연구들 역시 해수환경에서의 슬래그계 콘크리트가 유망한 재료임을 인정하면서도 장기 내구성과 재료 조성에 따른 차이를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북한 매체가 이번 사업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보도는 전문 건설연구기관도 아닌 수산사업소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다. 부족한 자재와 설비를 주민들의 ‘창의성과 정신력’으로 극복했다는 전형적인 자력갱생 서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보도는 북한 산업현장의 자재 부족 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품질 시멘트와 골재, 강재와 첨가제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폐기물을 이용해 기존 자재를 대체하는 일이 국가적 차원의 선전 소재가 될 이유도 크지 않다.
폐자원 재활용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산업 부산물을 건설재료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경제성과 환경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상적인 기술개발 방향이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정상적인 기술개발 과정에 필요한 객관적 시험자료와 국제적 비교는 공개하지 않은 채 이를 다시 ‘자력갱생의 승리’와 체제 우월성의 증거처럼 선전한다는 데 있다.
기술의 가치는 구호가 아니라 데이터가 입증한다.
북한이 이번 공법을 정말 “해양구조물 건설의 새로운 전환”이라고 주장하려 한다면 ‘예상 밖으로 강도가 높았다’는 선전문구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배합설계, 시험기준, 장기 내구성 자료와 실제 구조물의 추적검사 결과부터 공개해야 한다.
폐슬래그를 방파제로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선전문구를 객관적인 기술자료로 바꾸는 일이다. 북한의 경제·과학기술 보도가 신뢰를 얻기 위해 넘어야 할 방파제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