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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 반가움 속에 회자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죽음은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끝이며, 남겨진 이들에게는 상실과 슬픔을 뜻한다. 견해가 다르고 살아온 길이 달라도 타인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는 것이 보통의 인간적 도리다.
그런데 김정은의 사망설에는 종종 다른 반응이 따라붙는다. 사실인지 묻는 목소리 사이로 기대와 안도의 감정마저 엿보인다. 이 씁쓸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 확산된 김정은 사망설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 20일 김정은이 전날 가족과 함께 전시회를 참관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일에도 사실과 소문을 구분하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근거 없는 주장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망설이 거듭 생겨나는 데에는 북한 체제 자체의 책임이 크다. 최고지도자의 건강과 동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권력의 향방을 검증할 공개적 절차도 없다. 한 사람에게 국가의 운명을 집중시킨 체제에서는 그의 잠깐의 부재조차 거대한 추측을 낳는다. 지도자를 신비화하고 정보를 통제해 온 권력이 스스로 소문의 토양을 만든 셈이다.
그러나 더 무거운 질문은 따로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사망설에서 희망을 찾는가. 그 배경에는 김정은의 통치가 계속되는 한 자신과 가족의 고통도 끝나기 어렵다는 절망이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생존이 주민의 안녕과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억압의 지속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통치자에게 내려지는 참담한 평가다.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의 장수를 기원하는 구호가 아니다.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는 일상이며,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자유다. 가족의 행방을 알 권리, 신앙과 양심을 지킬 권리,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권리다. 이러한 소망을 가로막는 통치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정상적인 변화의 가능성보다 권력자의 유고라는 극단적인 변수에 기대게 된다.
주변 국가들이 느끼는 불안도 마찬가지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위협이 반복될수록 김정은 개인의 건강은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안보 문제로 번진다. 한 사람의 판단에 수많은 생명의 안전이 흔들리는 현실 자체가 비정상이다. 그의 사망설에 쏠리는 관심에는 호기심만이 아니라, 이 불안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지친 물음도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억압의 제도가 남고 세습권력이 이어진다면 주민의 고통 역시 계속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변화다. 그 변화를 오직 누군가의 죽음에서만 기대해야 한다면, 그 또한 너무나 비극적인 현실이다.
진심으로 김정은의 죽음이 기쁜 소식으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은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 주민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고, 정치적 억압을 거두며, 억류자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무력 위협을 줄이고 주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자유를 앞세우는 행보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존이 타인의 절망으로 받아들여지는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결국 자신의 통치를 바꾸는 데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이 문제의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된다. 지난 9월 말 보도된 국가정보원의 평가는 김정은이 체중 140㎏대의 초고도 비만 상태이지만 뚜렷한 건강 이상 징후는 없다는 것이었다. 체형만으로 수명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장수 연구와 특별한 의료 관리도 인간의 유한함을 없애지는 못한다. 통치자가 더 절실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은 자신의 수명만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 아래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다.
자신의 죽음을 반기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란다면, 살아 있는 동안 고통받는 사람부터 줄여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