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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역전승했다고 한다. 1차 투표의 열세를 뒤집고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꺾어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앞에는 경제적 난관과 우파가 강한 의회, 선거 불복이라는 만만치 않은 현실이 놓여 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국정의 성공까지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남의 나라 좌파 정치인의 승리를 곧 자기 이념의 승리로 받아들이며 들뜨는 이들이 있다. 이런 한국의 일부 좌파 인사들을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온다. 브라질 국민의 내일을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편이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이 그저 좋은 것인가.
축하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정치의 성적표는 당선증이 아니다. 국민이 받는 월급의 실질 가치, 장바구니 물가, 청년의 일자리, 거리의 안전이 성적표다. 승리의 연설이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국민의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민생을 앞세우는 정치일수록 더욱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는 말과 가난에서 벗어날 길을 만드는 일은 다르다.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을 지속할 재정과 생산의 기반을 허물면서 혜택만 약속한다면, 오늘의 박수는 내일 국민에게 돌아갈 청구서가 된다.
시장은 탐욕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시장이 만들어 낸 부를 나누겠다는 정치, 기업은 적대하면서 일자리는 늘리겠다는 정치, 국가의 지출은 선의로 포장하면서 그 비용을 부담할 국민의 형편에는 침묵하는 정치가 문제다. 구호는 정치인이 외치지만 계산서는 국민이 받는다.
선거 때마다 서민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온갖 약속을 쏟아 내던 사람들이 권력을 얻은 뒤에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가. 정책이 실패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가. 자기편의 부패에도 똑같이 분노하는가. 국민을 위한다는 주장의 진실성은 바로 그 순간 드러난다.
룰라의 임기 완수 여부나 브라질의 미래를 지금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다. 권력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환호하면서 그 권력이 국민에게 무엇을 남길지 묻지 않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지지자는 권력의 오만을 키운다.
좌파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나라의 역사와 정책 성과를 한데 묶을 필요도 없다. 비판은 정확할수록 강해진다. 겨냥해야 할 것은 국민의 고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빈곤 해결보다 지지층 관리에 몰두하며, 실패의 책임을 언제나 남에게 떠넘기는 좌파 권력의 행태다. 그런 정치는 국민의 삶에 기생하며 자기 세력만 살찌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브라질이든 대한민국이든 국민이 똑바로 서야 한다. 동서남북 어느 지역에 살든,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물어야 할 질문은 같다. 당신들의 집권으로 내 삶은 나아졌는가. 내 자녀의 기회는 넓어졌는가. 나라는 더 안전하고 자유로워졌는가.
권력의 맛에 좋아 죽는 ‘룰라류들’에게 국민의 삶까지 맡겨 둘 수는 없다. 그들이 승리를 자축할 때 국민은 성과를 따지고, 그들이 다시 표를 달라고 할 때 국민은 지난 청구서부터 내밀어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