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에런 소킨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인들은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으로 유출된 이메일을 비롯한 사적 정보를 일절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킨 자신도 그 해킹으로 곤욕을 치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소킨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이메일들은 불법으로 입수되었고 그 안에는 공익에 부합하는 정보가 전혀 없었으므로, 언론에는 보도를 삼가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소킨도 누군가를 체포해야 한다고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 에이미 파스칼의 가장 낯뜨거운 아마존 주문 내역이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방 보안관들이 《버라이어티》 사무실에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페이스북이 자사 정책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게시물을 삭제하는 것은, 편집자가 형편없는 기사의 게재를 거절하는 것에 더 가까운가, 아니면 정부가 누군가의 인쇄기를 압수하는 것에 더 가까운가? 그것은 기업이 책임을 다하는 행위인가, 검열인가? 소킨은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소셜 레커닝》(The Social Reckoning)이 갈피를 잡지 못한 실패작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가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페이스북을 둘러싼 싸움이 애초에 표현의 자유나 사람들을 보호하는 문제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싸움이었다.
《소셜 레커닝》은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제프 호위츠의 책 『망가진 코드: 페이스북의 내부와 그 해로운 비밀을 폭로하기 위한 싸움』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호위츠(제러미 앨런 화이트 분)가 내부 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건(마이키 매디슨 분)과 협력하여, 페이스북이 자사 서비스의 심각한 문제들을 고의로 외면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문제 가운데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보수 성향 이용자들을 극단주의 콘텐츠로 유도하고, 십 대 소녀 이용자들을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콘텐츠로 유도한다는 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이 도덕적 성전에 공감하지 않았다.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소니 픽처스는 개봉한 지 불과 3주 만에 이미 2,000개 상영관에서 영화를 내렸으며, 결국 수천만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킨이 마지막으로 이만큼 처참하게 실패했던 작품은 《웨스트 윙》에 이어 내놓은 《스튜디오 60 온 더 선셋 스트립》으로, 한 시즌 만에 종영되었다.
그때 문제는 지나친 진지함이었다. 이 드라마는 가상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다루었는데, 소킨은 코미디언과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입에 자신의 전매특허인 거창한 독백을 넣었다. 모두가 좀 가볍게 하라고 했다. 백악관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심야 코미디일 뿐이지 않은가.
소킨은 사실 텔레비전도 정치만큼이나 진지한 사안이라고 믿는다. 영향력이 더 크니, 어쩌면 정치보다 더 진지한 사안일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동성혼이 현실이 되는 데 《윌 앤 그레이스》만큼 기여한 정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역설적인 것은 이제 뉴미디어가 텔레비전을 대체했고, 실리콘밸리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도덕적 책임을 두고 할리우드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거드름을 피운다는 점이다. 그들이 잘난 체하는 《웨스트 윙》의 등장인물처럼 말하고 다녀도, 지나치게 진지하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킨은 기뻐해야 마땅하다. 그는 용감한 약자의 이야기를 만들려 했지만, 사실은 그가 속한 편이 승리했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허위 정보’를 전 세계적인 위협으로 만들어 낸 각종 비정부기구(NGO)와 딥스테이트의 정보 공작원들은 자신들이 바라던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얻었다. 이른바 ‘인터넷의 폐쇄’를 초래한 세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는 지금 잠시 활동을 멈춘 상태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면 맹렬하게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기업의 검열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최초의 텔레비전 검열 담당자는 1933년부터 1960년까지 NBC에서 일한 스톡턴 헬프리치였다. 그는 진보주의자였다. 실제로 과거에는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그는 비속어를 단속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야”, “저 사람을 정신병원에 처넣어”, “저 사람 나사가 풀렸어” 같은 무신경한 표현도 금지했다. NBC의 검열 담당자들은 포도주, 총기, 결혼 중개업체, 변호사, 카이로프랙틱 시술자, 관 제조업체, 장례업체, 그 밖의 ‘매장과 관련된 서비스’에 관한 광고를 방송하지 못하게 했다.
그들의 규칙 가운데 일부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그들은 법적 의무를 다하는 데서 더 나아가, 텔레비전을 도덕적이고 교육적이며 사람들의 품성을 고양하는 매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NBC의 권력은 페이스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헬프리치가 장례업체의 광고를 퇴짜 놓았다고 해서, 장례업체들을 폐업시키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정책을 바꾸어 특정 종류의 콘텐츠를 금지하면, 그 콘텐츠는 사실상 인터넷에서 추방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페이스북의 눈 밖에 나면 기업은 문을 닫게 된다.
소킨이 페이스북을 비판하는 논거는 페이스북이 아무것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미디언 빌 버가 연기하는 인물은 영화 내내 그 문제로 마크 저커버그(제러미 스트롱 분)를 질책한다. ‘사실 확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린 문제인 모양이다. 2020년 페이스북은 3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3만 5,000명이 넘는 인력을 콘텐츠 관리 업무에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내부 고발자인 라이언 하트위그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그런 콘텐츠 관리 담당자로 일했으며, 그 경험을 책으로 썼다. 페이스북의 콘텐츠 관리 대상에는 생명 존중(pro-life) 콘텐츠와, 감염병 대유행 당시의 봉쇄 조치 반대 콘텐츠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가 정말 사람들을 보호하는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면, 개봉 시점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소셜 레커닝》이 극장에 걸리기 6주 전, 메타는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자사의 대응과 관련하여 48개 주 법무장관이 제기한 소송에서 거액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 소송은 부분적으로 하우건의 폭로에 근거하고 있었다. 《소셜 레커닝》의 엔드 크레디트에도 이 소송이 언급된다. 그러니 영화 홍보팀이 171억 달러에 이르는 이 역사적인 합의를 영화 홍보에 활용할 방법을 찾았으리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영화도, 그 합의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결국 이 영화는 페이스북의 콘텐츠 관리 정책에 관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 정신 건강은 소셜 미디어에 대한 좌파의 핵심 불만, 곧 소셜 미디어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는 사실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곁가지에 불과했다.
2016년 소셜 미디어의 ‘허위 정보’와 ‘러시아 봇’을 둘러싼 히스테리가 주로 페이스북에 집중된 이유는, 페이스북이 검열 요구에 맞서 다른 플랫폼들보다 더 오래 버텼기 때문이다. 이제 악역으로 지목된 사람은 일론 머스크다. 현재 진보 진영의 검열에 저항하는 플랫폼이 X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이다. 에런 소킨조차 이 소재로 이상주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이유다. 《소셜 레커닝》, 곧 ‘소셜 미디어에 대한 결산’은 정작 그 무엇과도 제대로 결산하지 못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