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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한민국에 헌정질서가 있는가?

2026-04-07 08:01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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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국회는 헌법개정 발의의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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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憲法)은 조문으로 읽힌다. 그러나 헌정(憲政)은 삶으로 증명된다. 헌법이 눈에 보이는 국가의 틀이라면, 헌정은 그 틀을 움직이는 정신이고 습속이며 절제다. 그래서 헌정(憲政)에는 언제나 질서(秩序)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권력이 법의 문장을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고, 다수의 힘이 공동체의 근본 규범을 함부로 유린하지 못하게 하며, 국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연속된 책임으로 묶어 두는 힘, 그것이 바로 헌정질서(憲政秩序)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는 국민 앞에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 헌정질서가 존재하는가. 최근 국회에서는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6개 정당이 187명 의원 서명으로 개헌안을 공동 발의했고, 그 내용에는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승인권 도입, 계엄해제요구권의 격상,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지역균형발전 의무 명시 등이 포함됐다. 국회 의결에는 재적 의원 3분의 2인 197명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개헌(改憲)은 나라의 근본을 다루는 일이다. 그러므로 개헌은 언제나 신중해야 하고, 넓어야 하며,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 특정 세력이 숫자의 우세를 앞세워 자기 정치의 난맥을 돌파하거나, 자기 권력의 정당성을 덧칠하거나,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헌정의 성숙이 아니라 헌정의 도구화다.

헌법을 고치는 일이 곧 헌정질서를 세우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절차의 외양만 갖춘 채 국민적 숙의(熟議)와 폭넓은 합의(合意)를 결여한 개헌은,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혼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헌정질서의 핵심은 조문 그 자체보다 권력에 대한 태도에 있다. 권력은 헌법을 이용할 수 없다. 헌법 앞에서 스스로 제한되어야 한다. 다수는 헌법의 주인이 아니다. 다수 역시 헌법의 구속을 받는 객체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개헌 논의에서는 이러한 겸허함보다 정치공학의 냄새가 더 짙다.

진정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개헌이라면, 왜 국민 전체가 납득할 만한 충분한 공론과 합의의 시간이 보이지 않는가. 왜 개헌이 공동체의 미래 비전보다 당장의 권력 재편 논리와 더 긴밀하게 엮여 보이는가. 왜 헌법정신의 보강보다 진영의 유불리가 먼저 읽히는가.

헌정질서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한 절차일 뿐, 헌정질서의 전부가 아니다. 헌정질서는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고, 권력분립을 존중하며, 정치적 승자가 패자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서 비로소 살아난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정치는 다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유혹에 너무 자주 빠지고 있다. 의석의 많고 적음이 곧 정의의 많고 적음이 될 수는 없다. 힘이 있다고 해서 정당한 것은 아니며,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헌정의 시간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데 있다. 헌정은 한 세대의 기분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순간의 분노, 한 정파의 이해, 한 선거의 계산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정은 선대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제도적 신뢰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넘겨주는 책임의 이름이다. 그 책임을 망각한 개헌은 개혁이 아니라 훼손이다. 이름은 개헌일지 몰라도, 내용은 권력의 사기(詐欺)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지금 시험대 위에 서 있다. 국민적 숙의(熟議) 없는 개헌, 절제 없는 개헌, 자기부정 없는 개헌은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 헌법(憲法)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정(憲政)을 존중하는 정치다.

<論 說 委 員 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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