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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306] 그다지 사악하지 않은 제국

2026-04-12 08:4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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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J. 레이하트 Peter J. Leithart is president of the Theopolis Institute, Birmingham, Alabama. He posts regularly at his Substack, Notes from Beth-Elim. 테오폴리스 연구소 소장


개혁주의 사상가들은 최근 시민 통치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지지하고 교회를 증진하며 보호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해 왔다.

제임스 베어드의 『King of Kings』는 통치자들이 참된 종교를 증진할 때에만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적·역사적 논거를 간결하게 모아 제시한다. 다른 이들은 교회와 국가의 협력이 낡은 옛 계약 질서의 유물이라고 주장한다. 하느님께서 시민 통치자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증진하기를 원하셨다면, 어째서 신약성경은 그 점을 결코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크리스토퍼 첸의 최근 저서 『사악한 제국?』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곧 신약성경이 실제로 그 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첸은 루카-사도행전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 관리들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로 나타나는 대목들, 곧 병사들, 백인대장들, 총독들, 지방 총독들, 그리고 칸다케 여왕의 궁정에서 봉직하는 에티오피아 내시를 다룬 구절들을 해설한다.

그는 이야기를 교부 시대까지 확장하여, 콘스탄티누스 이전 훨씬 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정부 안에서 공직을 맡았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뜻밖에도 마지막에는 중국에 관한 장으로 글을 맺는데, 그곳에서는 8세기 이래 그리스도인들이 간헐적으로 정부 관리로 봉직해 왔다.

몇 가지 줄기가 두드러진다. 중요한 주제 하나는 루카가 자신의 복음서(루카 1,1-3)와 사도행전(사도 1,1) 서두에서 수신인으로 지목하는 테오필로와 관련된다. 테오필로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첸은 그가 로마의 관리였다는 강력한 논거를 제시한다.

루카는 그를 “각하”(kratiste)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은 루카-사도행전의 다른 곳들에서도 고위 로마 인사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를테면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가 펠릭스에게 보낸 편지(사도 23,26), 바오로의 재판 중 테르툴루스가 펠릭스에게 한 변론(사도 24,3), 그리고 바오로가 페스투스에게 직접 한 발언(사도 26,25)이 그러하다.

루카의 서문은 다른 방식으로도 본문 전체에 메아리친다. 루카는 예수님의 생애의 사건들을 “정확하게”(akribos) 서술하겠다고 테오필로에게 약속하는데, 이 단어는 바오로가 로마 관리들 앞에서 재판받는 장면들에서 세 차례 사용된다(사도 23,15.20; 24,22). asphaleia(“확실성, 견고하게 함”)도 마찬가지다.

루카는 예수님에 관한 테오필로의 지식을 “확고하게” 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반면(루카 1,4), 페스투스는 자기가 카이사르에게 보고할 수 있을 만큼 바오로에 관해 “확실한”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걱정한다(사도 25,26).

이 모든 것은 테오필로의 신원을 밝히는 데 흥미롭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루카의 집필 목적에 비추어 주는 빛이다. 첸은 “루카-사도행전은 로마 관리 한 사람에게 보내어진 것으로, 그가 어떻게 복음의 옹호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루카의 서사 속을 가득 메우는 모든 백인대장, 지방 총독, 총독, 병사들은 테오필로를 위한 실례들이 된다. 루카-사도행전은 우연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쓰인 “통치자들의 거울”이며, 루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신학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태너힐도 루카-사도행전에 관한 자신의 두 권짜리 연구에서 같은 점을 지적했다. 곧 루카는 복음의 문화적·정치적 영향을 보여 주며, “종교적·정치적 제도를 통제하는 이들은 바오로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린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여러 장면은 첸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바오로가 키프로스의 총독 세르기우스 바오로 앞에 서는 장면이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옳다. 바오로가 도착하기도 전에, 세르기우스 바오로의 궁정에는 바르예수라는 유대인 마술사가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유대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 전통들에 열려 있었다”는 증거이다.

바오로는 영적 능력을 겨루는 싸움에서 이 사칭자를 꺾고, 세르기우스는 충분히 깊은 인상을 받아 “주님의 가르침”(사도 13,12)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써 그는 “로마 정부 상층부에서 나온 첫 번째 개종자”가 된다. 이 사건은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 여정 맨 앞부분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그의 전 선교 활동에 정치적 방향성을 설정해 준다.

바오로의 생애 역시 정치적 여운 속에 끝난다. 곧 바오로의 난파 이야기(사도 27)에는 통치자들을 위한 교훈이 담겨 있는데, 백인대장 율리우스는 “배 안의 여러 집단, 곧 병사들, 선원들, 죄수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일하도록 만드는 데 핵심적인 지도력 역할을 수행한다. … 이런 방식으로 율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한 로마 관리가 어떻게 더 큰 공익을 위해 협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로마는 짐승이지만, 사도행전에서는 흔히 우호적인 짐승으로 나타난다.

『사악한 제국?』은 신약성경 연구에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은 신약성경이 로마 제국에 대해 일관되게 부정적인 초상을 제시한다고 말해 왔다. 로마는 요한 묵시록의 짐승이며, 성인들의 피에 취한 음녀 도시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카이사르의 체제에 맞서는 반제국 운동을 시작한다. (우연이 아니게도, 이들 학자 가운데 많은 이들은 21세기의 “사악한 제국”, 곧 미국의 강력한 비판자들이기도 하다.) 첸은 꼭 필요한 균형을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해서 반제국적 신약학자들이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복음은 로마의 주장들에 도전한다. 곧 로마가 평화와 정의를 확산시킨다는 구원론적 허세(아우구스티노의 『하느님의 도성』 제1권-제10권 참조), 끝없는 제국 지배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 그리고 카이사르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주님이자 구원자라는 신성모독적 주장에 맞선다.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특히 로마가 용의 하수인으로 동원된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묵시 12-13장). 아무리 자비로운 짐승이라 하더라도, 돌변하여 당신을 짓밟을 수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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