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기사 제목:

[자유시대] 사회주의(社會主義)란 무엇인가

2026-04-22 07:57 | 입력 : 리베르타임즈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휴머니즘으로 시작해 관료주의로 귀결된 길

2022년 5월 노재봉 전 국무총리님과 함께 찾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2022년 5월 노재봉 전 국무총리님과 함께 찾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작고하신 혜사(蕙史) 노재봉 국무총리님의 두 번째 기일(忌日)이 바로 내일이다. 이맘때가 되면 오래전 그분과 나누었던 짧지만 강렬한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대화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는 더 또렷해지고 있다.

언젠가 노재봉 총리님은 필자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왜 대학생들이 소위 운동권이 되었는가. 한마디로 설명해보라.”

필자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순수한 출발이었습니다. 바로 휴머니즘이었습니다.”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은 정말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하고, 억눌린 사람의 편에 서며, 불의에 저항하겠다는 열망 자체를 모두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출발의 언어는 인간, 정의, 해방, 평등 같은 아름다운 말들이었다. 문제는 그 순수한 언어가 어떤 사상과 결합했느냐는 데 있었다.

필자는 이어 총리님께 다시 여쭈었다.
“그러면 사회주의를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총리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짧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극단적 관료주의.”

그 순간 필자는 “유레카(Eureka)”를 외쳤다. 오래 붙들고 있던 의문이 한순간에 풀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왜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는 하나같이 인간해방을 말하면서 인간을 억압하는가. 왜 평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특권계급을 만들어내는가. 왜 민중을 위한다면서 민중 위에 군림하는가. 그 해답이 바로 그 한마디 안에 있었다. 사회주의란 결국 인간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인간을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는 체제였던 것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늘 정의와 휴머니즘의 언어를 앞세운다. 그러나 그 종착점은 대개 ‘인간의 얼굴을 한 천국’이 아니라 ‘관료의 얼굴을 한 지배체제’였다. 사회를 계획하고, 경제를 통제하고, 사상을 규정하고, 언어를 선별하고, 역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기구다. 그 권력기구는 결코 스스로를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개입과 더 강한 통제를 정당화하며 비대해진다. 그렇게 해서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극단적 관료주의로 미끄러진다.

이 점은 과거의 실패한 체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아도 이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도 민주화와 개혁, 정의와 약자 보호를 입에 달고 사는 세력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은 정작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부터 배웠다.

자신들은 언제나 선(善)이고, 자신들의 정책은 언제나 정의(正義)이며, 자신들의 실패는 언제나 더 큰 국가개입으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나랏돈, 곧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수많은 제도와 기구들이 국민을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국민 위에 서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원래 공복(公僕)이어야 할 자들이 도덕적 우월감까지 무기로 삼아 국민을 훈계하고 통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길이 아니다. 그것은 노재봉 총리님이 꿰뚫어 보셨던 바로 그 길, 곧 극단적 관료주의의 길이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선의의 이름으로 포장한다. 사회주의는 그 포장의 기술이 유난히 능숙한 사상일 뿐이다. 휴머니즘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국민 위에 새로운 성직자 계급처럼 군림하는 관료집단과 운동권 기득권을 만들어낸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언제나 약자의 편이라고 믿고, 역사의 진보를 대표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축소시키고, 자율적 공동체를 약화시키며, 국가와 유사국가기구에 대한 의존만 키운다. 결국 남는 것은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허가받은 범위 안에서만 숨 쉬는 관리 대상의 대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민주화를 말하면서 민주주의의 본령인 자유와 책임에는 무관심했는가. 왜 정의를 외치면서 법 위에 서려 했는가. 왜 민중을 말하면서 민중의 세금으로 귀족처럼 행세했는가. 그 배후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보다 제도와 권력에 대한 신앙을 앞세운 사회주의적 상상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을 자유로운 인격체로 보기보다, 지도와 계몽과 동원이 필요한 집단적 존재로 보는 시각 말이다.

노재봉 총리님의 “사회주의는 극단적 관료주의”라는 말씀은 단순한 개념 정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를 꿰뚫는 경고였다. 사회주의는 결코 약자를 위한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조직된 소수가 다수 위에 서는 체제이며, 선한 명분으로 시작해 특권의 구조로 굳어지는 체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이용당하는 것이 바로 휴머니즘과 정의의 언어다.

총리님의 기일을 앞두고 그 말씀을 다시 떠올린다. 오늘 우리 사회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노골적인 정치폭력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선의를 가장한 지배, 정의를 가장한 특권, 휴머니즘을 가장한 관료주의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보지 않고,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권력을 선의의 명분으로 무한 확장하려는 유혹을 거부하는 일이다.

그 짧은 대화는 끝났지만, 그 통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그 말씀의 무게를 다시 새겨야 할 때다. 휴머니즘으로 출발했으나 관료주의로 귀결되는 길, 그 사악한 착각에서 이제는 정말 벗어나야 한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리베르타임즈 발행인
Copyrights ⓒ 리베르타임즈 & www.libertimes.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리베르타임즈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리베르타임즈로고

신문사소개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도희윤) | 기사제보 | 문의하기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5길 12 타운빌 2층 | 이메일: libertimes.kr@gmail.com | 전화번호 : 02-735-1210
등록번호 : 415-82-89144 | 등록일자 : 2020년 10월 7일 | 발행/편집인 : 도희윤
기사제보 및 시민기자 지원: libertimes.kr@gmail.com
[구독 / 후원계좌 : 기업은행 035 - 110706 - 04 - 014 리베르타스협동조합]
Copyright @리베르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