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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제26차 전체대회를 앞두고 “거창한 새 투쟁기의 시작”을 선언했다.
겉으로는 재일동포의 권익 보호와 조직 부흥, 후대 교육을 말하지만,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재일조선인 사회를 김정은 체제의 해외 정치조직으로 다시 결속시키고, 북한 내부의 통치 구호를 일본 사회의 동포사회에까지 그대로 이식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글은 총련 결성 80돌까지의 10년을 “새로운 투쟁기”로 규정하고, 제26차 전체대회를 그 출발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투쟁’은 재일동포의 생활 안정, 차별 해소, 교육권 보장, 세대 통합을 위한 현실적 노력이라기보다 북한 노동당의 노선과 김정은의 지시를 해외에서 실천하겠다는 정치적 충성 결의에 가깝다.
동포사회가 처한 복잡한 현실은 사라지고, 오직 “사회주의조국을 받드는 강성총련”이라는 구호만 전면에 등장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북한 현실에 대한 과장된 미화다. 글은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 이후 북한에서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정치·경제·국방·문화·외교 전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식량난, 지방경제의 침체, 통제 강화, 외부 정보 차단, 강제노동과 인권 침해 문제는 철저히 외면된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자위의 힘”으로 포장하면서도 그 비용이 주민 생활을 얼마나 파괴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더욱이 이 글은 “세계는 그 어떤 위협과 제재도 조선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제재의 가장 큰 고통은 권력층이 아니라 일반 주민에게 전가되어 왔다. 체제는 핵무력 강화를 헌법에 명기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주민들에게는 충성과 희생만 요구한다. 그런 현실을 “존엄의 최고 경지”라고 부르는 것은 선전의 언어일 뿐, 주민의 삶을 기준으로 한 평가는 아니다.
총련을 둘러싼 서술도 마찬가지다. 글은 총련이 “반공화국, 반총련 책동의 광풍” 속에서도 버텨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총련이 일본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전적으로 외부의 탄압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다.
총련이 북한 정권과 지나치게 밀착해 온 역사, 일본 내 조선학교 교육과정의 정치성, 북한의 납치 문제와 핵 개발로 인한 여론 악화, 세대교체 속에서 재일동포 청년들이 느끼는 거리감 등은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의 진정한 과제는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 경쟁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며 정체성을 지키고, 차별을 극복하고, 다음 세대에게 자유롭고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총련 기관지의 글은 동포 개인의 삶보다 조직의 충성, 교육의 자율성보다 이념 계승, 권익 보호보다 체제 보위에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동포제일주의조직”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동포가 주체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지도를 받는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동포의 다양한 의견, 일본 국적자와 한국 국적자, 조선적 동포, 탈정치화를 원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 “강령적 서한”, “사회주의조국과 보폭을 맞추는 투쟁”만 반복된다.
문제는 이 같은 노선이 재일동포 사회를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해외동포 사회는 개방성, 다양성, 시민적 권리, 국제적 연대를 바탕으로 생존해야 한다. 그런데 총련이 여전히 북한식 충성 조직의 틀을 유지한다면, 일본 사회와의 신뢰 회복은 더욱 어려워진다.
조선학교와 동포단체가 진정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충성 교육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 자유로운 사고, 투명한 운영,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글은 김정은이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을 만나 “총련의 미래를 축복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지도자의 축복이 아니라 자유롭게 배우고 선택할 권리다.
아이들이 특정 체제의 선전 도구로 동원되지 않고, 스스로 정체성을 탐구하며, 일본 사회와 한반도 양쪽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야말로 진정한 미래다.
총련 제26차 전체대회가 정말 역사적 분수령이 되려면, 먼저 질문해야 한다. 총련은 재일동포를 위한 조직인가, 아니면 북한 정권을 위한 해외 전위조직인가.
동포의 권익을 말하면서 왜 동포 개인의 자유와 다양한 목소리는 인정하지 않는가. “강성총련”이라는 구호가 과연 재일동포의 삶을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다시 한번 그들을 북한 체제의 정치적 부담 속으로 밀어 넣는가.
총련이 진정으로 동포사회를 위한다면, 필요한 것은 김정은에게 바치는 충성의 언어가 아니다. 북한 정권과의 정치적 종속관계를 재검토하고, 재일동포 사회의 현실적 권익과 인권, 교육의 자율성, 세대 간 신뢰 회복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26차 전체대회는 “새 투쟁기의 시작”이 아니라, 낡은 체제 선전의 반복에 그칠 뿐이다.
재일동포는 어느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시민이며, 역사적 고난 속에서도 삶을 이어온 독립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총련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아무리 “부흥”과 “전면적 발전”을 외쳐도 그 구호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체제를 받드는 조직이 아니라 동포의 삶을 받드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총련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과제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