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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 |
미국 메릴랜드주의 우편투표 용지 발송 오류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메릴랜드 선거관리 당국은 일부 유권자에게 정당이 잘못 표시된 예비선거 우편투표 용지가 발송됐다고 인정했고, 50만 명 이상이 우편투표를 신청한 상황에서 의심을 없애기 위해 투표용지를 재발송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주 선거관리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가짜 투표용지 50만 장”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가짜 투표용지가 배포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즉, 이 사안의 성격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존재하지만, 적어도 우편투표 제도 안에서 대규모 혼선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단순히 미국식 정쟁의 한 장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조기투표, 우편투표, 사전투표가 “유권자 편의”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제도에서 편의는 결코 최상위 가치가 될 수 없다. 선거의 본질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투표하고, 그 표가 정확히 보관되며,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절차를 거쳐 결과로 확정되는 데 있다.
투표는 가능한 한 직접 해야 한다. 국민이 제 발로 투표소에 걸어가 신분을 확인받고, 기표소에서 직접 선택하고, 투표함에 자신의 손으로 넣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의례이자 책임이다. 물론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국민을 위한 예외적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예외가 원칙을 압도하고, 편의가 검증을 밀어내며, 행정 효율이 선거 신뢰보다 앞서는 순간 민주주의는 스스로 허약해진다.
한국의 사전투표제 논란도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전투표 시리즈를 통해 사전투표함의 보관, 이송, 봉인, CCTV, 참관, 관외투표 관리, 여론 왜곡, 해외 사례 등을 점검해왔다. 그 핵심은 하나였다. “믿어달라”가 아니라 “보여달라”는 것이다. 국민이 선거관리기관을 신뢰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 신뢰는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개와 검증과 감시 가능한 절차에서 나온다.
미국 메릴랜드 사례가 던지는 경고도 바로 이것이다. 우편투표든 사전투표든, 투표일 이전에 대량의 투표용지가 유권자의 손에 전달되고, 다시 회수·보관·분류·검증되는 과정이 길어질수록 오류와 의혹의 가능성은 커진다. 실제 부정이 있었는지 여부와 별개로, 국민이 “내 표가 정확히 처리되고 있는가”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선거의 권위는 흔들린다. 선거는 결과만 공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이 공정해 보여야 하고, 실제로 검증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세계적 추세라는 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외국도 한다”는 말은 제도 확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외국도 한다면, 그 외국은 어떤 신분확인 절차를 두고 있는가. 투표용지의 발급과 회수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보관 장소는 어떻게 공개되는가. 참관인은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가. 오류 발생 시 어느 단계에서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제도는 민주주의를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신을 제도화할 뿐이다.
선거제도의 제1원칙은 편의가 아니라 공정성이다. 제2원칙도 속도가 아니라 검증 가능성이다. 제3원칙도 행정 효율이 아니라 국민 신뢰다. 사전투표와 우편투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흐름일수록, 우리는 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투표가 국민의 손을 떠난 뒤에도 과연 국민의 눈앞에 있는가. 표가 이동하는 동안에도 감시 가능한가. 개표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표의 생명은 누구의 책임 아래 있는가.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국민의 신뢰 위에 서야 한다. 국민이 투표소까지 직접 걸어가 자신의 손으로 행사한 한 표가, 국민의 눈앞에서 보관되고, 국민의 감시 속에서 개표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論 說 委 員 室>